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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민영화 = 악' 덫에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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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철도노조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이날 파업 참가 노조원 8797명이 일터로 돌아왔다. 서울 구로동 구로차량기지로 철도노조원들이 복귀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역대 최장기간(22일) 이어진 철도파업이 끝난 지난해 12월 30일 민주노총 조합원은 “이거(철도) 밀리면 두고 봐라. 가스고 뭐고 다 민영화된다”며 격분했다. 같은 날 코레일 관계자는 “져놓고 무슨 현장투쟁 운운하며 오기를 부리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양측이 승패의 개념으로 철도파업 종료를 평가했다.

 이지만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철도파업 철회를 이기고 진다거나 선과 악의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노조와 정부에 반성해야 할 숙제를 한 다발 던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두 당사자가 ‘실패의 성공학’을 곱씹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방지책과 함께 유사시 조기에 수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충고다.

 이번 파업으로 국민은 큰 불편을 겪었다. 화물수송 차질로 막대한 피해도 발생했다. 권순원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파업에 대비한 흔적이 안 보인다. 사전에 준비만 잘했어도 이렇게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탄광노조와 일전을 앞두고 1년치 석탄을 비축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것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파업 3일 전만 해도 “설마 파업하겠느냐”며 낙관했다. 막상 파업하자 우왕좌왕한 이유다. 여론에 기대는 게 유일한 대응책이었다. 국토교통부도 노사문제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현장엔 보이지 않았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대화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대화해도 노조가)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왜 남의 일 보듯이 하느냐”고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법을 집행하는 정부에서 초법적 엄포가 나오기도 했다. 여형구 국토부 2차관은 지난해 12월 28일 “필수공익사업장의 불법파업에 참여하는 직원은 직권면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서승환 장관도 거들었다.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직권면직을 항공이나 병원 같은 일반 기업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발상이다.

 대결로만 치닫는 노사문화도 문제다. 평상시 코레일과 노조의 대화 창구는 닫혀 있었다. 사전에 조합원의 고충이나 고민을 해결할 길이 없었던 셈이다. 노조와 조합원은 “파업하면 얻는다”는 투쟁논리에 집착한 듯하다. 파업찬성률이 89.7%에 달했지만 소득 없이 복귀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제동이 걸린 것은 정부의 큰 부담이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겠다”고 했다.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가 민영화는 아니라는 방어논리를 펴는 데 집중했다. 조준모 성균관대(경제학) 교수는 “정부 스스로 ‘민영화=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고 풀이했다.

 일부 정치권이 파업에 불을 지피는 관행도 여전했다. 막판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합의점을 도출했지만 직전까지 “면허의 효력을 중단시켜야 한다”며 정부에 각을 세웠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도 가세했다. 공기업 경쟁체제의 장단점을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 현 정부와 정치권·노동계의 대리전으로 몰고 갔다.

글=김기찬 선임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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