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관광과 민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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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민속극장을 열겠다는 안이 당국에 의해 발표되었다. 장소는 현재의 을지극장을 개조해서 쓰고, 개관하는 일자는 오는 9월말로 못박아 놓았다니까, 아마 세부계획까지도 대강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원칙적으로 환영할만한 「아이디어」란 점을 전제해놓고서 몇 가지 주문이 있다. 첫째는 관광용이라고 하여 보여주는 내용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적당히 현대화·풍속화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관광」이라는 미명아래 아무렇게나 공연물을 질 낮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둘째는 생각해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관광객을 위한 민속극장 이전에 도대체 민속극장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는 점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하자면 핑계가 외래 관광객을 위했지, 사실은 그것이 민속예능을 창달하는 상설공연장 구실까지도 정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처지로서는 제대로 전통적 예술을 키워나가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못되는 데다 남에게 보여주는 시설을 하자는 것이니까 그 근본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셋째로 기왕 시내 한복판에 어엿하게 자리를 잡을 양이면 예산도 넉넉히 해서 현재 있는 자원만을 부려먹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원(주로 인자가 되겠지만)을 캐내는 데도 인색치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여석기<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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