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 사람들 ⑥] 셰르파 밍마와 다와 형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26면

2011년 네팔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급 14개 봉우리를 오른 밍마 셰르파. 사진은 칸첸중가(8586m) 정상이다. 밍마의 동생 다와 셰르파(작은 사진)는 지난 5월, 형에 이어 14개 봉우리를 완등 했다.

지난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69·이탈리아) 이래 히말라야 8000m 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산악인은 전 세계적으로 30여 명에 불과하다. 그중 네팔 사람은 2명이다. 밍마 셰르파(35)와 다와 셰르파(31)는 형제지간으로 네팔 마칼루바룬국립공원 왈룽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히말라야 짐꾼부터 시작해 고산 등반 가이드가 된 둘은 2011년과 지난 5월에 14좌를 완등 했다. 네팔 사람치고는 큰 체격에 강인한 골격과 광대뼈가 인상적인 형제는 ‘슈퍼맨’처럼 강해 보인다.

2010 년 7 월 ,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 히말라야 후셰(3500mm)마을에서 밍마·다와 형제를 처음 만났다. 나는 ‘가셔브룸5봉 원정대’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원정대가 등정을 못하고 패퇴하는 발걸음은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여름을 맞은 마을은 황금빛 밀밭 사이로 ‘세멘독’이라 불리는 해당화가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세 명의 사람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파키스탄 등반은 7월이 피크 시즌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필시 발토로 빙하에 있는 가셔브룸1·2(8068m·8035m)봉우리나 K2(8611m)를 목표로 하는 산악인일 것이다. 그러나 차림새나 규모가 일반적인 원정대와 완전히 달랐다. 서양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으며, 등짐도 많지 않았다. 보통 히말라야 원정대는 아파트 이삿짐에 맞먹는 양의 짐을 수반한다.

밍마와 다와 그리고 단 한 명의 짐꾼으로 꾸려진 미니 원정대는 가셔브룸 베이스캠프를 향하고 있었다. 형제는 네팔에서 고산 등반 가이드로 일한다고 했다. 셰르파는 흔히 ‘클라이언트 (Client)’라 불리는 외국 원정대를 정상까지 안내하고 보수를 받는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경우 대략 2000~3000달러(약 200만~300만원) 정도다.

그러나 형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네팔 최초, 셰르파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밍마는 10개 봉우리를 올랐으며, 다와 또한 14좌 중 절반 정도를 오른 상태였다.

“셰르파들도 14좌를 오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돈이 없다. 우리는 등반 가이드로 일하며 번 돈으로 여기까지 왔다. 며칠 전 낭가파르바트(8025m)를 등정했고, 이번 달 가셔브룸1봉을 오를 계획이다. 그러면 (8000m 봉우리) 2개가 남는다.” 결연한 의지와는 달리 밍마의 말투는 다정다감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때만 해도 형제의 행보는 네팔 셰르파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원정대에 고용돼 등반 가이드 비용으로 먹고사는 셰르파에게 ‘14좌 완등’ 타이틀이 왜 필요하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형제는14좌 완등 타이틀을 갖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주위에 있는 셰르파 동료를 모아 본격적으로 에베레스트 등반 가이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고산 등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데다 셰르파 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형제의 비즈니스는 하루가 다르게 번창했다. 그들은 현재 네팔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정대 에이전시, ‘세븐서미트 트렉(Sevensummittreks)’을 운영하고 있다. 원정대는 물론 ‘히말라야 허니문 트레킹’ 상품까지 팔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지난봄, 사업가로 변신한 형제를 다시 만났다. “이번 시즌에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78명이나 모았어. 동원된 셰르파만 150명이야. 클라이언트와 셰르파를 합쳐 약 150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지. 성공률이 70%에 육박해. 이 정도 성공률은 우리밖에 없어.” 다와는 이제 완연한 사업가였다.

‘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은 김영주 일간스포츠 기자가 히말라야에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김영주 기자는 지난해 6월부터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14개 봉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걷고 있다.

사실 우리는 비즈니스 때문에 만난 게 아니었다.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후 하산길에 사망한 고 서성호 대원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카트만두 교외 화장터에서 조우했다. 세븐서미트트렉은 서성호 대원이 속한 한국 원정대의 현지 에이전트를 맡았지만, 다와는 서 대원을 클라이언트로 대하지 않았다. 밍마와 다와는 여러 차례 서 대원과 원정을 함께한 동료였으며, 서 대원은 형제가 14좌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은인이었다.

김영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