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생사와 주소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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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7차 남북적 본 회담이 11일과 12일 평양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를 위해 한적 대표단 일행 59명은 작 10일 또다시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갔다.
작년 8월30일 평양에서 극적인 제1차 회담이 있은 이래 이제 만 1년이 가까워 오고 있으나 회담은 의연히 정체된 속에서 답보 해 있다. 그에 따라 애당초 남북적십자 회담에 대해 걸고 있던 커다란 관심과 기대가 차차 식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적십자 회담이 부진하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적이 예비 회담에서 합의된 의제의 구체적인 토의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적은 의제 순서에 따라 의제 제1항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생사와 주소를 알아내며 알리는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과 서식까지 제시했었다.
그러나 북적은 실질적인 토의에 들어가기 전에 남한의 법률적·사회적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공 단체 해체·반공법과 국가 보안법의 폐기 등 요구를 들고 나왔었다.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또 최근에는 상대방의 리·동마다 「적십자 요해 해설 인원」을 파견하는 문제를 먼저 다루자고 제의했다.
남북적십자 회담은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라는 전제 조건 아래 시작된 것이다. 적십자 정신은 적국의 부상 장병이라 하더라도 인도적인 견지에서 서로 구호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적십자 회담에서는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을 찾아주며 그들의 뼈아픈 고통을 하루바삐 덜어주는데 목적이 있으며, 여기에는 순수한 동족애와 인간애가 있을 뿐이다.
북한은 의심할 바 없는 공산주의 체제,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 밑에 그들 나름의 이념과 체제를 철두 철미 강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측에 법률적·사회적인 여건 조성을 주장하는 것은 북의 체제는 그대로 두고 남의 체제만을 붕괴시키자는 저의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요해 해설 인원을 파견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오늘날 개방된 사회에서는 「라디오」 하나만 가지면 산간 벽지라 하더라도 남북적십자 회담에 관한 자세한 상황은 물론 저 멀리 해외에서 일어난 일까지도 즉각 전달되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런데도 북은 그들의 밀폐된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며, 남북적십자 회담의 상황마저 자세히 알리지 않고 있는 터에 요해 해설 인원의 상호 파견을 주장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길이 없다.
특히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현 단계에서 누가 어디서 누구를 위하여 요해 해설을 하겠다는 것인가.
남북 대화에서 합의될 수 있는 서로의 주장이나 제의는 그 내용이 누구의 눈에도 현실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인 것이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으로써만 남북 동포에게 다같이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고 상호의 이해는 물론 신뢰를 회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이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만을 계속 들고 나온다는 것은 곧 대화를 고의적으로 저해하는 결과 밖에는 안된다. 북한측은 이번 다시 열리는 남북적십자 회담에서부터라도 종래의 무모한 선전을 그치고 가장 시급하게 다루어야할 문제로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생사와 주소를 알아내며 알리는 문제』부터 우선 토의하도록 그 성의를 다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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