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누크·드라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요즘 북경 발 「뉴스」중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정치가가 있다. 그의 뒤엔 언제나 후광처럼 주은래의 미소짓는 얼굴이 보인다. 『「캄보디아」 왕국 민족 연합 정부』라는 이름으로 북경에 망명 정부를 세운 「노로돔·시아누크」.
그는 최근 「아프리카」·「유럽」 등의 11개국을 순방하고 지난 5일 북경에 돌아왔다. 북경 공항엔 주은래 수상을 비롯해 엽검영·이선념 등 중공 조야의 거물들이 나와 그를 영접했다. 또 5천명이 넘는 군중들까지 동원되어 꽃다발을 흔들었다. 새삼 자신의 존재를 중공내외로 과시한 셈이다.
한편 「비밀 외교」의 그림자인 「키신저」와 「시아누크」가 회담하리라는 소문이 외신에 파다하게 나돌았었다. 「크메르」 문제로 두통을 앓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또 미국은 「크메르」 폭격을 오는 8월15일 한으로 중단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에 있다. 의회의 그런 압력은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크메르」 전선에서의 「시아누크」 반격은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크메르」공화국은 자신의 영토 중 거의 75% 이상을 「시아누크」 연합 세력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시아누크」가 이끄는 반 「론·놀」 세력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 수도 「프놈펜」을 위협할 수도 있다. 다만 「국제적인 분쟁의 핵」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론·놀」 정권은 내정 불안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다. 「크메르」공화국을 지탱하는 힘이 그만큼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내우 외환에 머리가 무겁다. 배경의 「시아누크」 사진에서 홍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로 만 보기엔 힘들게 되었다.
「시아누크」가 70년3월 「론·놀」의 「쿠데타」로 밀려난 것은 그 당시만해도 동정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른바 「네포티즘」 (벌족 정치) 에, 국영 「카지노」 (도박장)까지 벌여놓고 있던 판국 이어서 사회 불안은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더구나 그는 이름난 「플레이보이」로 「멜로·드라머」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도무지 국가 원수로서의 도덕적인 권위가 없었다.
바로 그가 오늘 비록 망명 정권의 원수이긴 하지만 여유 있는 처신을 할 수 있는 것은 여간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론·놀」의 정권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안정되었다면 미국은 그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키신저」는 「시아누크」와의 회담을 자제하며 추파를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시아누크」는 보아란듯이 북경의 공항에서 『「키신저」와 회담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호언하고 있다. 미국은 「시아누크」의 정치적 「멜로·드라머」에서 또다시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