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화톳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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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04면

주말이면 숯가마 찜질방 가는 재미가 들렸습니다. 장작을 때는 진짜 숯가마입니다. 제일 뜨거운 방 이름이 가장 예쁩니다. ‘꽃방’입니다.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온몸을 담요로 감싸고, 장갑에 양말을 착용하고, 나막신까지 신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무서워서 아직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얼굴에 플라스틱 가리개를 쓰고 기다란 쇠스랑을 든 아저씨가 시뻘건 숯 더미를 긁어내 나가면, 활짝 열린 불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한 자세로 30초도 못 버틸 거면서 불 구덩이 앞에 엉덩이부터 들이대는 모습이 우습습니다.

작은 화톳불이 있는 토굴 안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은근한 숯불 맛이 또 다릅니다. 붉으락 검으락 숨쉬는 게 어질어질 보입니다. 한번 헤집어주면 우주의 별처럼 빛나는 파편이 금보다 아름답습니다.

어릴 적 보이스카우트 캠핑 때 부르던 노래도 흥얼거려봅니다. ‘불타오르는 화톳불 속으로 추억에 잠기네/조물주와의 신비한 속삭임 우리의 밤일세/고요하고 적막한 밤 저 시냇가에 앉아/세상 고락과 번민을 잊고서 나 편히 쉬리라.’ 올 한 해가,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모든 고락과 번민이 저 불 속으로 온전히 사라져 버리길-.

가리개를 쓴 아저씨가 새로 꺼낸 벌건 숯 더미를 두 삽 퍼다 줍니다. 다시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쳐옵니다. 이제 씻으러 가야 할 시간입니다. 새해도 그렇게 맞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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