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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범 숭배라면 오해 … 한·일관계는 중요" 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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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전격적이었다. 아베 주변에서는 “내년 2월 도쿄도지사 선거, 4월에는 소비세 증세가 있어 선거결과나 경제효과에 따라선 정권에 ‘더블 쇼크’가 될 수 있다”며 “따라서 찬반 양론이 있는 야스쿠니 참배의 타이밍으로선 지금이 ‘마지막 기회’로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한국과의 남수단 실탄 제공 진실 공방을 겪으며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며 최종 결단을 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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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참배의 배경이 무엇이건 이날 아베가 기자회견과 담화에서 밝힌 역사관이나 참배 이유는 일국의 지도자로서 너무나 황당할 정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먼저 이날 회견과 담화에서 “야스쿠니 참배를 전범을 숭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에 입각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야스쿠니를 찾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야스쿠니에는 현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2차대전 당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돼 있다. 원래 희생자 246만 명의 위패가 있던 곳에 1978년 비밀리에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분류돼 사형되거나 옥중에서 사망한 14명의 전범을 ‘쇼와(昭和) 시대의 순난자(殉難者)’란 이름으로 합사한 것이다.

 일본은 “전범을 단죄하고 전후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조건 아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을 통해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그런데 약속을 180도 뒤집고 전범을 영웅 모시듯 해놓은 곳을 참배한 것이다. 한국 등 국제사회가 문제 삼는 전범 합사에 대한 질문에는 “일본은 과거의 반성 위에 기본적 인권을 지키고 세계 평화에 공헌해 왔다”며 딴소리를 했다.

 또한 아베는 이날 회견에서 “어머니를 남기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전장에서 사라져간 영령의 명복을 빌고 리더로서 손을 모으는 것은 세계 공통의 리더 자세가 아닐까” 하고 되물었다.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국가공안위원장은 이날 아베의 이 발언을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거들었다.

 ‘세계 공통’이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빗댄 것이다. 아베는 올 5월에도 “미국 지도자가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인 알링턴 묘지를 생각해보라”며 “야스쿠니 참배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한 것으로 일본 지도자로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링턴은 법적 국립묘지다. 심사기준이 엄격해 아무나 묻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군법회의에서 처벌된 자나 범죄를 저질러 사형에 처해진 이는 제외된다. 전범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비하면 야스쿠니는 종교법인이다. 전쟁 혼을 모시면서 자기 마음대로 대상을 정했다. 법적 근거도 없다. 또 알링턴은 자격 요건을 충족해도 최종 선택의 몫은 개인이나 유족이다. 반면 야스쿠니는 철저한 배척주의다. 이곳에는 2만1000명의 한국인이 강제로 합사돼 있다. 이날 아베가 현직 총리로는 최초로 참배한 진령사에 한국인이 합사돼 있다. 한국의 유가족들은 “합사를 취소해달라”는 소송까지 냈지만 야스쿠니는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베는 이날 “진령사에 참배를 하며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을 위해 명복을 빌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아베 총리는 또 자신만 야스쿠니를 참배한 게 아니라는 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등 야스쿠니를 참배한 모든 총리는 중국·한국과 우호관계를 더욱 잘 구축하고자 희망했던 분들”이라며 “일·중, 일·한 관계는 매우 중요하며 이 관계를 확고히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일본의 국익이라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고 했다. 그야말로 뺨 때리고 쓰다듬는 궤변이라는 게 주변국 정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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