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구멍 튼 동서 감군 회담|암중 모색 백일만의 결실…그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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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참가국의 범위와 자격 문제로 암중 모색만을 거듭하던 동서 감군 교섭 예비 회담이 회담 개막 후1백일이 지난 14일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제국의 양보로 당초 소집 구상과는 약간 변질되어 가까스로 1차 본 회의가 소집 됐다.
중부「유럽」국가들의 병력과 이 지역에 주둔 중인 외국군(주로 미-소 병력)의 감축을 목표로 한 이 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당사국은 물론 주변 국가를 포함한 19개국의 이해가 난마처럼 얽혀 종래의 군축 회담처럼 뚜렷한 진전 없이 제자리에서만 맴돌아 왔다.

<소, 미보다 유리한 입장>
회담 벽두 소련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던 회담의 명칭 문제,「루마니아」와「불가리아」 의 참가 자격 요구, 「헝가리」를 감군 대상에서 빼자는 소련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만 1백여 일이 넘은 점에 비추어 이 회담의 앞길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능히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동서 감군교섭은 처음 NATO측에서 소련이 제의한「유럽」안보 및 협력 회의(CSCE)에 대응하여 이에 응하는 조건으로 제안, 동-서 양 진영의 균형 있는 병력 감축을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균형 감축이란 단순한 병력 수의 비례에 의한 감축이 아니라 지리적인 군사적 이점 및 전략상의 이점까지 포함, 서로의 전력 면에서 균형이 맞도록 감축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유럽」의 병력 배치 상황으로 보아 소련이 미국에 비해 병력도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 측은 이 회담에 융화 되 NATO측이 내세운 상호 균형 병력 감축 회담(MBFR)이라는 회담 명칭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예비 회담 개막 직전에 요구, 서방측의 묵시적인 승인을 받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곧 이어「업저버」자격으로 회담 참가 초청을 받았던「루마니아」와「불가리아」가 회담 당 소국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하여 다시 한번 파란을 겪었다.
스스로 병력 감축 대상 국이 되고자 자제하고 나선「루마니아」의 입장은 기왕에 동구 「블록」에서 독자 노선을 걸어왔던 터에 적극 이 회담에 참가함으로써 동구의 세력권에 대한 소련의 거사 적 개입 근거로 되는 이른바 제한 주권론(브레즈네프·독트린)을 크게 견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배제하자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소련 측이「루마니아」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 예비 회담 개최를 지연하려는 눈치를 보이자 NATO측은「루마니아」를 설득, 2주일이나 걸려 이 제의를 철회시키도록 했다.

<미의 해외 군비 삭감 탓>
이 문제가 해결되자 다시 소련 측에서「헝가리」를 병력 각축 대상 국에서 제외,「업저버」자격으로 참가시키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는 당초 중부「유럽」의 소련 주둔 중 철수로써 서구 국가의 안보는 물론 동구에 대한 소련의 통제 완화 효과를 노린 NATO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다.
소련 측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이 지역에 주둔 중인 소련군 4개 사단이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 인접한「루마니아」와「유고슬라비아」등「발칸」제국에 대한 군사적 압력이 계속될뿐더러「헝가리」가 중립국인「오스트리아」와 격하고 있어 NATO촉으로서도 이 지역 군사력에 대한 견제 효과를 노리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NATO측은 소련의 이러한 제안에 반대, 최근까지 예비 회담을 열지 못한 채「바르샤바」측과 이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 왔다.
그러나 소련 측으로서 볼 때 미국이「유럽」에서 일방적 철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연은 하고 있으나 이미 국내 경제를 비롯, 의회의 압력으로 어차피 해외 주둔 군비를 줄여야 할 처지에 있는 미국의 입장을 이용, 집요하게「헝가리」의 지위문제에서 NATO측의 양보를 받아 내고자 했다.「유럽」의 현상 동결을 노리는 소련으로서는 애초에 동-서 감군 교섭에 소극적이었으므로 이러한 문제로 회담이 지연되더라도 안타까울 것이 없으므로 해외 주둔 군비 절감 요구에 쫓기는 미국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 지리·전략은 불고>
한편 미국은「닉슨」대통령이 월남 종전에 관한 연설을 하며「유럽」에서의 미군 철수 문제에 언급할 때 절대로 일방적인 철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빈」의 감군 교섭 내용에 이르러 종래 처럼『균형 감군』이란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상호 감군』이라고 표현하여 당초의 태도에서 후퇴한 입장을 시사해 주었다.
이는 소련 측으로 볼 때 미국이 지리·전략적 이점을 포함한 균형 감군 이 아닌 단순한 병력「퍼센트」면에서의 감군 에 대응할 태세라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짙게 해 준다.
따라서「헝가리」문제에서의 NATO측의 양보로 감군 회담은 끝내 서측 7개국, 동측 4개국 참가에「업저버」8개국이 참석하여 진행되게 된 것이다.
이런 정황을 종합할 때 미국은 한시라도 빨리 감군 협상을 벌여 미군 조기 철수를 서두르는 조급한 입장을 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번「헝가리」의 감군 회담 참가 자격 문제에서 NATO측이「바르샤바」측 요구에 양보하게 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동서 진영의 긴장 완화 추세를 바탕으로 시작된 동서 감군 예비 회담이 본 회의를 열게 되어 가까스로 숨구멍을 트기는 했으나 개막 초에 절차 문제도 아닌 호칭과 참가 범위 문제로 진통, 이처럼 당초의 구상과는 상당히 변질된 형태로 시작된 사실로 미루어 실질 문제 토의는 물론, 의제 선정에서는 더욱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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