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성|현정준<서울대문리대 교수·천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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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창립 한지 겨우 여덟 돌이 되는 한국 천문 학회가 지난 어린이날에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최근 미국서 돌아 온 한 회원이 들려준 얘기는 퍽 인상깊은 것이었다. 그가 5년 전에 미국에서 발표한 논문이 실마리가 되어 미국의 천문학자들이 우리 나라의 고대 천문관 측 기록에 유례없던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천문 관측 기록이란 다름 아닌 임진왜란 때 수개월에 걸쳐 나타났던 객 성에 대한 것.
객 성이란 성도에 없는 새로운 별을 가리킨다. 혜성·신성·초신성이 바로 객 성에 속한다. 객 성의 출현이 나라의 흥망성쇠의 전조로 생각되었던 시대라고는 하겠으나 전란 중에도 천문관 측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우리 조상의 슬기에 미국 천문학자들이 경탄해 마지않았나 는 것이다.
똑같은 시대에 서양에는「튀코·브라헤」(Tycho Brache)같은 이름난 관측자가 있었는데도 객 성에 대한 관측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이는 아마도 십자군 전쟁으로 천문관 측 따위는 엄두도 못 내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객 성이 이처럼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왕량」(카시오페이아)자리에 강한 전파를 내는 전파 천체「카시오페이아A」가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긴 했으나 아직 그 생년월일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같은 전파 천체는 흔히 과거에 초신성의 폭발이었었던 자리에 있기 마련이다. 그 유명한 예로 하늘에서 강한 전파 원으로 알려진 황소자리A(게성운)는 1054년에 폭발한 초신성이라는 사실이 중국과 일본의 고대 천문관 측 기록에서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왕량」에 나타났던 객 성이「카시오페이아A」를 태어나게 한 초신성의 폭발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미국 천문학자의 관심을 끌게 되어 드디어는「팔로마」산의2백「인치」망원경을 동원, 「카시오페이아A」를 추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5백여 년 전 우리 조상이 쌓은 업적이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 미국 천문학자들의 경탄을 불러일으키는데도 우린 별다른 업적을 못 내고 있으니 천문학을 하는 우리로서 부끄러운 심정 금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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