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 묵은 워싱턴 스카이라인 손댈까 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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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워싱턴 모뉴먼트(기념탑)다. 1885년에 완공된 이 모뉴먼트는 높이가 555피트(169m)다. 다음으로 탑이 아니면서도 높은 건물이 캐피털 힐로 불리는 의사당 건물이다. 289피트(88m)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워싱턴의 상징물은 일직선으로 솟아 있는 캐피털 힐-워싱턴 모뉴먼트-링컨 메모리얼(높이 30m)이다. 워싱턴의 대부분 건물은 이보다 낮다.

 1910년에 만들어진 연방 고도제한법이 이런 도시를 가능케 했다. 이 법은 수도 워싱턴의 건물 높이를 주거지역 90피트(27m), 상업지구 130피트(39m)로 제한했다. 아주 예외적으로 백악관과 의사당 건물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도로변 일부 건물에 한해서만 높이를 160피트(48m)로 허용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워싱턴에선 13층 이상의 고층건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워싱턴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논쟁이다.

 대럴 아이사(공화당·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의 제안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아이사는 수도 워싱턴을 관할하는 연방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 시장과 국립수도계획위원회(NCPC) 등에 “고도제한법을 개정하기 위한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이사 위원장은 “(고도제한법 제정 후)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수도 워싱턴의 경제가 커진 만큼 고도제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에 그레이 시장이 반색했다. 그레이 시장 측은 “워싱턴의 인구가 점점 늘어 2030년이 되면 도시가 포화상태가 된다”면서 “최소한 건물 높이를 200피트(60m)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 증가에 맞춘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특히 시장 측은 “건물 증개축 권한을 아예 시에 돌려달라”고도 요구하고 있다. 페드로 리베이로 시장 대변인은 “지방정부가 관내 건물의 신축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워싱턴의 건물 신축을 규제하는 NCPC와 워싱턴시 자문위원회는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규제가 한 번 풀리기 시작하면 뉴욕이나 시카고 등 다른 대도시처럼 마천루가 들어서고, 교통 정체로 인한 혼란과 피해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필 멘델슨 시 자문위원장은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고도제한법이 바뀔 경우 워싱턴의 상징인 스카이라인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NCPC 측도 “DC(컬럼비아 자치구)에는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만큼 섣불리 고도제한법을 건드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찬반 논리가 워낙 팽팽하게 맞서다 보니 아이사 위원장의 제안은 1년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새해가 다가오면서 공교롭게도 찬반 양측은 내년 상반기에는 개발이든, 보존이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00년이 넘게 묵혀 있던 이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아이사 의원의 위원장 임기가 내년에 끝나기 때문이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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