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시간 늦춰진 ‘베이비 부머 은퇴 폭탄’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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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기자] ‘복잡한 도심을 떠나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 집을 줄여서 돈을 마련한다. 답답한 아파트를 벗어나 땅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

은퇴 후의 로망이다. 이런 생각을 본인도 많이 해봤을 테고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들었을 것이다. 이 같은 은퇴 후 꿈을 근거로 주택시장에 ‘베이비 부머 은퇴 폭탄’이 터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700만~800만으로 추산되는 베이비 부머의 은퇴가 몰리면서다.

하지만 로망은 로망으로 끝나나 보다. 최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전국 16개 시·도 60대 은퇴자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꿈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문조사 결과는 3가지로 요약된다. ①이주했거나 이주계획이 있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②집을 옮길 때 아파트를 가장 선호한다. ③집 크기를 별로 줄이지 않는다.

은퇴자들 중 이주했거나 이주계획이 있는 사람은 43.4%였다. 이주성향은 그나마 대도시지역에 살던 은퇴자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그렇더라도 먼 고향은 아니다. 살던 곳과 가까운 지역을 선호했다.

아파트에 살던 은퇴자 3명 중 2명꼴인 66.2%가 이사한 뒤에도 여전히 아파트에 살고 싶어했다. 이사하면서 응답자의 절반이 주택유형을 바꿨는데 아파트로 가장 많이 옮겼다.

이사한 은퇴자들 가운데 집 크기를 줄인 사람은 4명 중 한 명인 24.6%였다. 집값을 낮춘 경우는 3명 중 한 명인 33.1%였다. 이 같은 결과는 은퇴하면 집을 줄이고 집값이 싼 곳으로 옮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통념에 배치된다.

예상과 달리 은퇴자들이 기존에 살던 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주택시장 침체로 집을 줄여도 별로 남는 게 없고 이사하는 데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이 뒤따르는 게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주택경기가 좋았을 때는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바꾸면 차액이 많이 남았다. 요즘은 작은 집의 단위 면적당 가격이 큰 집보다 비싸게 되면서 차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다운사이징 매력 줄어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가 초기 단계여서 은퇴 충격이 덜해서일 수도 있다. 아직은 퇴직금 등으로 유지할 수 있어서다.

‘베이비 부머 은퇴 폭탄’을 우려하던 주택업계와 시장은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시장에 은퇴자들이 내놓은 중대형 주택 매물이 넘쳐나지 않고 중소형 주택시장에 ‘실버 바람’이 불지도 않고 있다. 종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베이비 부머 은퇴 폭탄’이 해체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연됐을 뿐이다. 부동산이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기나긴 은퇴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동산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은퇴 후 소득이 끊어지면 부동산에 기대어 집을 줄이고 사는 곳을 바꿔 주머니를 불리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이번 설문조사 결론은 그동안의 통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은퇴자들의 대응이 늦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은퇴 후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주택 다운사이징을 적극 검토하고 주택자산을 줄여 유동성과 환금성을 확보하라고 강조한다.

주택시장의 ‘베이비 부머 은퇴 폭탄’은 시간이 좀 늦춰졌을 뿐 결국엔 터지게 된다. 폭발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늦춰진 폭발 시간을 활용해 폭발 시간을 길게 하는 것이다. 은퇴자도, 시장도 미리 준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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