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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전시의 문화인들(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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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육군 연예대>91)
연예인들이 전투중인 일선장병이나 후방부대를 위문한 것은 물론 전쟁기간이 가장 활발했으나 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인 48년께부터 였다.
그것은 군 정훈국 관계자들이 무대예술을 매개로 한 정훈선무공작의 효과를 깊이 이해 한데다가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기꺼이 반공이념투쟁에 투신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연예인들의 종군활동은 6·25 1년 전인 49년4월 지리산 공비토벌 때부터 시작되어 이 땅에 반공 극이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49년4월5일 국방부 정훈국 차장인 김종면 중령이 인솔하는 20여명의 연예인들이 군복에「헬멧」을 쓰고 지리산지구의 국군부대를 위문했다.
이것이 연예인들의 최초의 종군위문이었는데 큰 효과를 거둬 이때부터 정훈 공작에서의 연예인들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지리산위문을 끝내고 돌아와서 이를 토대로 윤부길씨가 쓴 반공 극 『지리산의 봄소식』은 6·25전까지 전국을 순회하면서 4백 회의 공연을 기록하였다. 6·25이전 1년 동안 연예인들은 『지리산의 봄소식』 외에도 『민족의 꽃』 『남풍』 등 반공 극으로 전국을 순회 공연하여 일반국민들에게 반공사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헬멧」쓰고 노래와 춤을 공연>
이 같은 연예인들의 활동이 인연이 되어 6·25후 부산에서 조직된 군예대는 평양까지 종군, 그곳 시민위안공연을 가졌고 또 위문활동을 벌이는 사이에 가극의 성격을 지닌 순수연극 『성 잔·다르크』를 공연하여 무대예술의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김종면씨(당시 국방부 정훈국 차장 겸 보도과장=중령·예비역준장·현 서울신문 감사·연예인협회 종신고문·50) <군의 무대예술을 통한 정훈선무공작은 내가 정훈국 차장 겸 보도과장으로 있을 때인 48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나는 무대예술로써 군 장병들의 사기와 교양을 높이기 위해 연예인들을 대거 동원하려했으나 예산이 부족하여 이들을 아예 입대시키는 방법을 고려했습니다.
보도과의 변형두 소위한테 군 연예대의 창설에 관한 모든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연예를 통해 정훈효과를 실험, 과시하기 위해 지리산에서 공비를 토벌하고 있는 국군위문에 나섰습니다.
변 소위의 기안을 내가 송면수(고) 정훈국장의 결재까지 대리로 해서 국방부 채병덕 참모총장의 결재를 받았어요.
49년 봄 윤부길(고) 박호·왕일문(피살)·이몽녀(피살)·윤난성·김정자·박옥초·고향선(고) 나일희(피살)씨 등 연예인들이 총탄이 날아드는 속에 「헬멧」을 쓰고 노래와 춤 등의 「쇼」로 지리산 위문공연을 성공리에 끝내고 돌아왔어요.
지리산 위문을 마친 후 윤부길 작 『지리산의 봄소식』이란 반공 악극을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이것이 반공 극의 효시였습니다.
『지리산의 봄소식』 공연에는 나와 변 소위를 비롯, 현역 군인들이 극장을 경비하여 공연 후에는 배우들을 군용「트럭」으로 집까지 태워다 주었어요. 이렇게 연예인들의 신변보호에는 만전을 기했어요.
이 연극은 정부각료를 비롯해 경기·이화·숙명·무학여고생들이 관람했는데 공연 시작 전에는 내가 무대에 올라가 『진시황은 흙과 돌로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우리국군은 살과 피와 뼛가루로 여러분들을 위한 장성을 쌓고있다』고 연설을 했어요.

<연극보고 감동 위문대 보내>
이 연극에 감동한 무학여고생들은 공비토벌을 하고있는 국군들에게 보내달라고 위문대 1천5백 개를 만들어 학도호국단장이 나한데 가져오기도 했어요. 이들의 위문대가 학생들이 군에 위문품을 보내는 시초입니다.
이 악극은 한주일 예정의 공연을 한 주일 더 연장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 후 정훈국에서는 윤철·이수길·고봉학·임장현(고)씨 등의 연예인들을 대거 입대시켜 육군 제17연대에서 정식으로 군 훈련을 받게 하고 윤부길·박호씨 등을 중심으로 군 예대를 정식으로 편성하려던 참에 내가 3사단 23연대장으로 나가는 바람에 뜻대로 안됐습니다.
나는 무대예술을 통한 정훈효과를 잘 알기 때문에 6·25후인 51년 초 제9사단 부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사단자체 연예대를 조직했습니다.
비록 내가 정훈국에서 떠나긴 했지만 군 예대의 반공연예인들은 늘 나와 연락을 취하며 나를 따랐기 때문에 사단 연예대를 만드는데는 아주 수월했어요.

<공비토벌 국군장병 사기높여>
52년 육본정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는 육군 연예대 창설 1주년 기념공연을 관람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군예대를 육군편제에 넣어 주었습니다. 이때 군예대원들은 문관대우를 받고 정식예산을 갖고 운영해 나갔습니다.
이 같은 군예대와의 인연으로 나는 지금도 김종필 국무총리와 함께 연예인협회 종신 고문으로 있습니다.>
▲변형두씨(당시 국방부 정훈국 소위·현 한국「휀스」 주식회사 상무이사·55) <49년 봄 국방부 정훈국에서는 김종면 차장과 내가 주동이 되어 반공 연예인들을 모아 위문대를 편성, 「국방부 정훈국 위문단」이란 완장을 두르고 지리산 위문을 갔습니다.
이 위문단은 노래와 춤으로 공비토벌중인 장병들을 위문하고 대구·부산·진해·진주 등을 돌며 군 위문과 함께 일반공연을 마치고 제주도의 제2연대를 위문하라는 명령을 받고 제주로 건너가려는 도중 사고가 일어나 귀경하고 말았어요.
목포에서 해군LST 편으로 제주도로 건너가려는데 공산당 「프락치」로 들어와 있던 한 해군소위가 우리 연예인들을 엉뚱한 배로 태워서 납북하려는 도중 해상에서 가까스로 구출됐어요.

<연예인 납북기도, 간신히 구출>
49년5월1일 정식 편제는 아니었지만 군예대를 조직했습니다. 이때 군예대는 제1소대는 『지리산의 봄소식』을 공연한 「멤버」들로 구성하고 제2소대는 윤철·이수길·고봉학·임장현(고)씨 등으로 구성하여 아예 군에 입대시켜 소위·준위·상사·중사 등의 계급을 주려고 17연대로 훈련을 보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나온 군예대 제2소대원들은 우리 정훈국과 협조하여 두 번째로 윤철씨가 주연한 김건 작 『민족의 꽃』이라는 반공 극을 갖고 군 위문에 나섰어요.
군예대의 「화랑악극소대」(제1소대)와 「양양악극소대」(제2소대)는 반공 극인 『지리산의 봄소식』과 『민족의 꽃』에 노래와 무용을 곁들인 「쇼」로 경부선을 경계로 전국을 동서로 나누어 각 도시를 순회하며 위문과 일반공연을 했어요.
화랑소대는 내가 인솔하여 강원도 영월에서 『지리산의 봄소식』을 1백 회 째 공연했고 윤철씨를 중심으로 구봉서·허장강·배삼용·조덕성·최수경씨 등으로 구성된 「양양」소대는 백도흠 중위의 인솔을 받아 49년8월말까지 순회공연을 계속했어요. 공연도중 대원들을 보강했는데 김호길·길옥윤·윤인자·박춘석씨 등이 이때 들어 왔습니다.

<일반공연으로 반공의식 고취>
군예대가 위문과 일반공연을 병행한 것은 정훈국이 물질적인 지원을 충분히 못해주니까 대원들이 경비를 벌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일반공연까지 한 셈이나 결과적으로는 일반국민들에게 반공의식을 고취 계몽하는데 공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어요.
앞서 말한 배우들이 훈련까지 받고도 임관하지 못한 것은 채병덕 참모총장이 경질되고 또 김종면 정훈국 차장이 연대장으로 나갔기 때문이죠.
두 번째의 순회공연을 끝내고 세 번째의 공연을 위해 반공 극 『남풍』을 준비 중 군예대는 정훈국에서 육본 후생감실로 소속이 바뀌었어요.
소속이 바뀐 군예대는 후생감실 이종태 대위의 주선으로 공군본부에서 자금지원을 받아 1부의 연극 『남풍』은 화랑소대가 맡고 2부의「쇼」는 「양양」소대가 맡아 10월1일 공군창설 기념일에 부민관(지금 국회의사당)에서 세 번째의 공연을 성황리에 끝냈어요.
군예대를 별로 신통하게 여기지 않던 후생감실은 「남풍」 일반공연으로 수입을 꽤 올리니까 태도를 바꾸어 독자적으로 자활해가며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군요.
나는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서 곧장 군예대를 이끌고 부산·진주·대구 등지를 돌며 추석대목을 노린 일반공연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경 명령을 내리더니 기어코 군예대를 해산시키고 말았어요.
이로써 6·25 이전 반공연예인들의 군예대 활동은 막을 내리고 6·25를 당해 새로운 육군연예대의 활동이 시작됩니다.>
◆주요일지(1953년1월29일∼31일)
※29일 ▲B·29, 평양일대 맹폭 ▲「아이젠하워」 대통령, 미국 7함대의 대만봉쇄조치 해제
※30일 ▲진남포 상공서 소제 폭격기1대 격추 ▲B·29, 평양일대 맹폭 계속 ▲거제도의 공산포로, 미 경비병 1명 타살 ▲부산국제시장대화 8천여 호 전소
※31일 ▲「미주리」전함 원산포격 ▲서울대, 퇴임하는 「밴플리트」 8군사령관에 명예박사 수여 ▲백선엽, 대장 승진 ▲일본외상, 한일수교 다짐

<정정>
본 연재 제446회 사진설명(상) 중 변형두씨는 「소령」으로, 군예대 선임하사는 「이 중령 운전병」으로 각각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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