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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안녕들하십니까" 까지 시대의 명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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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 알다시피 1980년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 박해일을 증거 부족으로 놓아주면서 형사 송강호가 하는 명대사가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 클라이막스로 치닫던 영화에서 내던져진 한마디. 그때 송강호의 그 복잡한 표정, 뉘앙스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원래 대본에는 없고 송강호의 애드리브였다. “뭔가 한마디 했으면 좋겠는데…”라는 감독의 말에 송강호가 즉석에서 던졌다. 봉 감독은 “송강호가 연기 천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름 돋았다”고 했다.

 나중에 송강호는 “그런 패악질을 하고 다니면서도 밥이 먹히느냐는 의미였다”고 했지만 당시 많은 관객들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 천진한 소년의 얼굴을 하고 죄책감 없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범인에게 느끼는 일말의 연민과 가여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80년대에 대한 송가 같은 이 영화에서 감독의 마지막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아주 일상적인 인사말이면서 우리의 실존과 맞닿은 언어다. 오랜 세월 수탈과 전쟁, 가난으로 생존의 위기를 겪어온 지난 역사가 녹아든 관용구다. 이제는 지나간 한 시대를 환기시키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2002년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는 “우리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란 명대사가 나왔다. 겉으론 고상한 척하지만 속물 근성 가득한 시나리오 작가 김상경. 제작 중이던 영화가 엎어질 위기에 처하자 악착같이 자기 돈을 챙기려는 그에게, 한 선배가 던지는 말이다. 80년대식 정의와 역사가 사라진 자리에 자본과 욕망과 속물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대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끝자락,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대학생이 쓴 대자보에서 명대사가 나왔다. ‘안녕들하십니까’다. 철도 파업 등 현실 정치에 대한 청년 세대의 발언에, SNS 아닌 대자보라는 점 등으로 주목받았다. 대학생을 넘어 고등학생, 성적 소수자, 성매매 여성에 이르기까지 ‘안녕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이어졌다. 일각에서야 이의 정치적 파장과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느라 여념 없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저 개인의 안녕을 넘어 사회적 안녕을 묻는 사회적 화두가 던져졌다는 점이 아닐까. 그것도 강요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묻는 질문형 화두다. 평범한 일상어로 서로의 안녕을 물으면서 자신의 안녕도 돌아보게 하는, 우리 시대의 명대사다.

말하자면 이제 ‘밥은 먹고 다니는데, 정말 안녕들 하신 건지, 괴물이 된 건 아닌지’ 돌아보자는 얘기다. 질문엔 답이 있는 법.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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