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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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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회생활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든 사상과 문제는 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상대적 가치의 존중이란 전제 위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회가 갖는 유기체로서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급격한 사회변동은 각 분야에서 불균형과 부조화를 심화시킨다. 어느 정도까지는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조화를 얻으려는 사회내부의 복원력이 약화될 때 정신과 물자면에서 분극화 현상이 확대되고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불균형과 부조화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크게 본다면 전근대적 사회구조와 가치관이 무너지고 비록 새로운 가치체계는 아직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근대적 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사회발전의 여러 양상을 부정적으로만 다를 수 없다는 것이 부정적인 입장의 낙관론일 것이다.
반면 경제·사회·교육·문화 등 각 부문에서 드러내고 있는 부조화는 부분적·국소적인 것이 아니고 심각한 내부의 병상이라는 진단도 있다.
우선 현실적으로 제거되고 있는 갈등과 모순 가운데 몇 가지의 「케이스」를 들어보자.
경제성장과정에서 빚어진 불균형은 소득의 격차를 확대시켜 계층적 분화를 촉진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의 조화를 깨뜨리는 기초적인 여건일 것이다.

<경제성장과정의 불균형>
경제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문제는 요즘 정책운영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대내 균형과 대외 균형과의 모순이다. 수출산업은 호경기를 누리고 있으나 내수산업은 심각한 원료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국내시장의 수급관계가 흔들리게 됨으로써 결국 수출자체를 제약하는 압력이 되고 있다. 이른바 기아수출도 그 품목이 증가하여 국민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범위가 넓어지게 되면 총체적인 수출능력의 약화 내지 상시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수출촉진정책에 따른 국민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물가안정에 힘을 쏟고 있으나 국내가격을 저 수준으로 묶으려고 애쓰면 쓸 수록 제품들은 국내공급을 피하게 되며 물가상승의 요인을 이룬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수출촉진정책과 국내가격정책간의 조화가 시급하다.
도시화·공업화의 진전과 관련된 문제로서 공해의 가속화 현상과 환경의 파괴도 자연과 인간과의 부조화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
오늘날 공해는 도시나 공장지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어촌을 포함하여 전국적인 문제로 확산되고 있으며 보다 살기 좋은 생활환경의 보존과 개발을 위해 본격적인 대세를 갖추어야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같은 사회적 부조화를 해소하려고 하는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평준화」작업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교육면의 평준화 작업은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고민을 극적으로 제시해주는 한 단면이다.

<교육 평준화의 내부문제>
중학교육의 평준화에 이어 고교교육 제도의 개혁이 내년부터 실천에 옮겨지게 되었는데 국가가 필요로 하는「엘리트」군의 양성 또한 절실한 현실적 요청이란 점에서 평준화가 수준의 저하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부조화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다기적이다. 제도의 문제나 경제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크지만 가치관의 동요와 충돌이 여러 병폐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통적으로 고질화된 권세만능의 풍조가 국민의 단합과 일체감을 그르치고 있다. 관료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가 되어야한다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권위주위로써 국민을 대하고 권세를 남용하기 일쑤이다. <김두종 씨>
부조화의 문제를 역사의 문맥 속에서 살펴본다면 봉건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혼재하는 의식구조의 이중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데서 도의 지향과 이익 지향간의 갈등과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개체와 전체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한다는 것도 역사적 전환기에 놓인 당면한 명제이다. 자칫하면 개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획일주의적인 사고방식에 흐르기 쉽지만 어디까지나 개체가 살고 전체가 화음을 이루는 동적·발전적인 조화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긴요한 것은 사회 의식의 구심점과 바탕의 방향성 같은 것이다. 개성존중, 건전한 의미의 개인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우리」라는 복수적 전체로 지향·승화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성과 구심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정동씨>
처방을 찾는데 선행될 것은 부조화에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에너지」 의 문제이다.
후진사회의 악순환으로서 불균형의 극대화 혹은 부조화와 분극화가 일반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는데 외부의 힘이나 물리적인 충격에 의존하면 부작용을 일으켜 조화를 성취할 수가 없다. 국민전체의 주체적 역량에 의하여 창조적 소산으로서 조화를 이룩해야한다. <서경수씨>

<분수를 아는 생활 태도를>
이와 관련해서 대개 후진국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역사발전의 요인이 그 사회내부의 성숙에서 오지 못하고 외부의 충격으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근대화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의 도전을 받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서 경제·사회구조의 파행성과 취약성을 면치 못하게 된다.
우리 나라는 일제하에서 유통·소비만이 먼저 근대화의 세례를 받았고 해방 후에도 미국 자본주의의 소비적 측면에 경제활동이나 생활양식이 일제히 쏠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생산「패턴」과 소비「패턴」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쉬운 말로 하면 자기자신을 모르고 남의 흉내만 내려고 하는 생활의식 속에서 부조화의 본질적인 원인이 파생한다. 1인당 소득이 이제 겨우 2백「달러」를 넘어섰는데 간접 자본면에서 2천「달러」수준이상으로 잘 살려고 한다.
비근한 예로서, 우리 나라처럼 격차가 심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회도 드물 것이다. 집에서는 항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연탄을 때고 있으면서 사무실은 초현대식「빌딩」에 있으며 출·퇴근은 만원「버스」속에서 야단법석을 떨지 않을 수 없다.「코피」를 배달해서 마시는 나라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이 모두 생산과 소비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먼저 분수를 아는 생활태도부터 배워야한다. <조동필씨>
빈부·지역간 소득·교육·문화수준 등의 격차가 현재화되는 과정에서 형태적인 면의 평준화를 성급하게 이룩하려고 하면 무리가 가기 쉽다. 사회학적으로는 몇 가지의 매개변수를 필요로 한다.
또 경쟁의 원칙이 왜곡돼서 작용하게 된다면 내용의 평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세대간에 가치관의 마찰>
『매개변수 중에서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은 중간계층의 형성이다. 분극화 현상을 완화하고 각 부문간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튼튼한 중간집단이 감당할 수 있게 되어야한다.』 <서경수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교육제도의 개선에 주력하고 있으나 교육내용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서 개혁해야 한다. 실용주의적인 주입식 방식은 학생들의 인격형성을 저해하고 있으며 시험과 자격증을 위한 공부로 일관하여 교육의 이념과 목적을 그르치게 하고있다. <김두종씨>
물질만능·배금주의, 그리고 잘못된 능률주의는 균형있는 인간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사회생활에 적응을 한다는 것과 모든 도덕적 가치를 신봉한다는 것 사이에 위화감이 널리 조성되고 있다.
물질적인 성장의 달성과 사회정의의 구현이 상호 모순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부조화의 가장 깊은 환부라 할 것이다.
가치관의 대립은 세대의 문제에서도,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기성의 권위는 더욱 그 위신을 실추하고 있으나 이에 대체될 새로운 권위는 자라나기 전에 다음 세대에 의해서 부정된다. 이를테면 세대의 이분화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세대간의 마찰은 전통적인 가족제도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이른바 핵가족이라는 현대적 사고방식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향락주의로 타락할 경우 무서운 도덕적 불감증을 퍼지게 한다. 덮어놓고 선진제국의 생활양식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

<「다운 것」이 조화의 원리>
전통적 가치 속에서 우리의 현실과 잘 융합시킬 수 있는 것을 발굴하여보다 슬기로운 삶의 양식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도 조화가 이룩되었을 때 비로소 그 본질을 드러낸다. 대학생은 대학인답게, 지식인은 지식인다운데서 조화를 얻는다. 「다운 것」이 조화의 원리이다. 교육투자도 우리의 실정에 어울리게 해야한다. 대학을 나와서 수위를 하고, 고교를 나와서 맥주병이나 나르는 것은 결국 교육투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 <조동필씨>
『또한 조화를 잃은 사회는 필연적으로 그 구조가 경화된다. 신축성과 탄력성을 끊음으로써 내외의 도전에 대하여 활기있게 응전하지를 못한다.』 <유정동씨>
경화된 사회는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게 된다. 때문에 국부적 요법이나 물리적 치료에 의존하게 되는데 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고 한가지 증상을 수술하면 또 다른 증상이 생긴다.

<도덕적 가치에 대한 신념>
사회자체가 유기적인 생명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부조화를 극복하는데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인간 존중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신념이다. 쉬운 말로 예를 들면 정직한 사람은 정당한 보수를 받아야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대가를 받아야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이 사회통념으로 굳어져야한다.
역사의 변동기나 사회의 변동기에 있어서는, 돈을 벌고 출세할 수 있는 「찬스」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출세주의와 야심을 덮어놓고 배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경쟁에는 몇 가지 확고한 「룰」이 있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 정당한 평가, 노력에 상응한 대가라는 원리가 무너져 버린다면 진정한 의미의 경쟁사회일수 없다.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서 성공한 자기는 끊임없이 원망과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넓게는 사회적인 반목, 대립을 격화시킴으로써 의식과 감정의 부조화를 깊게 할뿐이다.
이와 같은 원리적인 바탕이 제대로 깔린 다음에 합리적인 정책의 구조도 조성될 수가 있다.
『각도를 바꾸어서 문제를 규명해보면 경제면의 조화도 결국 복지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것이다. 가령 수출지원은 일반 국민의 부담으로 이루어진다. 그 이익이 기업가에게만 돌아간다면 우리가 애써서 수출하는 의미가 없다. 소득 분배면을 비롯한 경제운영의 각 부문에서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정책수단이 보완되어야 한다.』 <조동필씨>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함에 있어서 부정적인 가치를 계승·발전시킨다는 것은 결코 인습과 구폐를 고집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다.
외래사상의 소화도 전통적 가치라는 토양과 문화의 수용력이란 매개체 없이는 불가능하다.
외래풍조의 외형적인 모방은 문화면에서도, 심한 부조화를 낳고 있는데 근래에는 주체의식의 비고라는 시대적인 요청 속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널리 퍼지고 있다. 자기 분수를 알고 지키며 문자 그대로 주체적 역량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될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개체와 전체의 동적 조화>
그렇지 못하고 외형적 모방을 뒤집어놓은 외형적인 반작용에 그친다면 더욱 혼란만 빚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항상 경계해야할 일은 어떠한 개혁이나 개선도 내면의 논리와 당위성이 뒷받침되어야 그 실효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쳐 말하면 사회 전반의 자발적인 의욕과 참가를 통해서 결집되는 역량이 십분 창의를 발휘할 때 고도의 능률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규정한다면 조화와 균형은 다르고 타협과 해결도 다르다. 예컨대 소득의 불균형도 기회균등과 사회정의의 바탕 위에서라면 그다지 격심한 부조화와 연결되지 않는다.』<유정동씨>
도덕적 기반이 무너졌을 때 불균형은 부조화와 일치한다.
타협과 해결도 마찬가지이다. 명분과 사리를 떠난 일시적인 타협으로, 나와 남, 개체와 사회사이의 여러 문제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해의 상충이 있고, 견해의 대립이 있을지라도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관용·양보·자제의 정신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해결을 얻게 된다.
우리는 격변하는 내외정세 속에서 우리의 향방을 옳게 정립하고 조화로의 것이 무엇인가 냉철하게 성찰해야할 것이다. 개체와 전체 속에 함몰되어서도 안 되고 아집이 전체의 균형을 깨뜨려서도 안 된다. 양자가 동적으로 조화될 수 있는 사회건설이 우리의 이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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