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손잡고 8세대 디스플레이 '노광기' 세계 첫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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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평판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려면 유리 기판에 빛을 쪼여 회로를 그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체 공정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기술이다. 회로를 그리는 장비가 노광기다. 한국은 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일본에서 노광기를 전량 수입해 왔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노광장비 구입비로만 한 해 평균 5억8000만 달러를 써야 했다.

 국내 기업과 연구진이 ‘노광기’의 핵심 기술을 2008년부터 5년여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정부 연구지원금 212억원을 비롯, 41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노광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번에 확보한 노광기 기술은 ‘포토 마스크’가 필요 없는 디지털 방식인 8세대(8G)급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것이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노광기는 필름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포토 마스크에 빛을 쪼여 유리 기판에 회로 패턴을 그렸다. 그러나 8G 노광기는 포토 마스크가 필요 없어 컴퓨터로 설계한 회로를 직접 유리기판에 투영시킬 수 있어 생산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진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또 55인치 TV 디스플레이 6장에 해당하는 대형 유리기판(가로 2200×세로 2500㎜)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이다. 이 기술을 확보함에 따라 개발·생산기간을 3개월 이상 단축하고 생산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공정 구현에 따른 고화질 경쟁에서도 다른 나라 업체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노광 기술은 외국 기업의 엄격한 기술 통제로 접근이 어려워 평판 디스플레이 제작에 필요한 다섯 가지 공정 가운데 유일하게 국산화하지 못한 분야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노광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수입 장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외국 장비 기업을 통해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 기술이 경쟁국에 유출되는 위험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개발 연구에는 경쟁 관계이자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과 LG가 협력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공동 대응체제를 구축했다. 또 에버테크노·코아시스템즈 같은 중소기업이 참여해 개발과 동시에 대·중소기업 간 기술이전이 이뤄졌다. 산업부는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더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광기 장비 생산 등 상용화하는 데는 2년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7G급 노광기는 대당 100억원이지만 8G급은 대당 200억~300억원 수준이다.

김기찬 선임기자

노광기 평판 디스플레이는 설계도를 유리 기판에 새겨 회로를 만든 다음 전선 등을 연결해 제작한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처럼 유리에 감광액을 바르고 설계대로 빛을 비춰 회로를 새긴다. 이 과정을 노광(Exposure)이라 부른다. 핵심 공정인 노광을 담당하는 장비가 노광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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