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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 Story] 태권도 배우는 9살 백혈병 백인 소년

미주중앙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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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라미라다 빅토리 태권도장에서 김훈용 관장이 제인(9)의 띠를 고쳐매 주고 있다. 두 사람은 검은 띠까지 몇 년 걸리겠느냐는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신현식 기자

금발머리, 뽀얀 피부의 9살 소년이 몇 분째 하얀색 태권도 도복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쭉 뻗은 발차기로 송판을 두 동강낸 게 고작 30분 전인데 "몇 살이야?" 한마디에 수줍은 모양이다. 이름은 제인(Zane Reed). 친구가 써줬는지 옷깃 한쪽 한글 이름이 뚜렷하다.

라미라다 빅토리 태권도장에서 만난 제인은 볼 살이 통통했다. 복숭아 빛 뺨과 힘센 기합소리, 몇 배나 큰 상대에게 '맞든, 안 맞든' 부딪쳐보는 용기까지 도저히 백혈병 환자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만났을 땐 눈빛부터가 '아픈 아이'였는데 1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어요. 아주 똘망똘망 하죠?"라며 김헌용(46) 관장이 웃으며 거든다.

제인과 김 관장이 만난 건 지난해 가을, 위티어 크리스천 학교에서였다. 왕따 근절 캠페인의 일환으로 태권도 시범을 보이던 중 그의 눈에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소극적인 제인이 들어왔다. 이런 건 처음 본다는 듯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제인 역시,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 며칠 후, 제인은 거짓말처럼 도장 문을 두드렸다.

"아니, 잘 다니다가 1~2달씩 안 나오고, 다시 나오면 얼굴에 핏기가 없더라고요. 제인이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학교에 알아보니까 입원 치료받느라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도장 평생 이용권'을 줬어요. 가끔 입원할 때 빼고, 빠지는 날이 없어요. 제일 열심이죠."

찬 바람이 도장 유리창을 두드린다. 승급시험이 한창이라 방해하지 않으려 밖에 나와보니 도장 문앞에 사진 한장이 붙어있다. 사진을 보내온 곳은 오렌지카운티 어린이 병원. 사진 속 새 장난감을 들고 활짝 웃는 제인과 링거를 꽂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다.

"제인에게 생일(11월7일)에 무슨 선물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저와 함께 장난감을 모아달라'고 하더라고요. 병원 친구들에게 보내고 싶다고. 참 기특해서….부랴부랴 원생들과 모으기 시작했죠. 세균 걱정돼서 돕고 싶은 사람은 꼭 새 것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죠. 제인이 아니었으면 제가 이런 걸 언제 해보겠어요(웃음)."

모두의 사랑이 모인 장난감은 총 120개. 제인과 김 관장은 장난감을 5박스에 나눠 담아 병원에 전달했다. 제인에게 왜 생일선물을 거절했느냐고 묻자, "그게 제 생일선물인데요?" 하며 말을 잇는다. "제가 병원에 오래 있어봐서 잘 알아요. 아무데도 못 가고 천장만 보고 있는 게 참 힘들거든요. 관장님과 친구들이 도와줘서 병원 친구들이 참 좋아했어요."

김 관장은 머쓱한지 제인의 띠를 다시 매어준다. 이번 승급시험으로 제인은 다음주 띠 색깔을 바꾸게 됐다. 덕분에 큰 배움을 얻었다는 김 관장은 내년 2월, 제인 치료비 모금과 병원 친구들을 위한 '킥-어-톤(Kick-A-Thon)'을 계획중이다. 송판 1장당 1달러로 계산해 기금이 모인 만큼, 기부자들이 송판을 격파하는 행사다. 10달러를 기부하면 송판 10개를 깨는 셈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피부로 와닿는 거잖아요. 제인이도, 저도, 원생들도 그걸 느끼고, 나누는 중이에요. 사람은 마음으로 크는 거죠."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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