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공포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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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차하는 사이에 모든 결판이 난다. 아차하는 순간에 저지르는 실책이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매우 끔찍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눌러 생각한다해도 너무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차하는 순간』을 불도에서는 「찰나」라고 말한다. 범어의 Ksana에서 나온 말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손가락으로 한번 튀기는 사이에 65찰나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6백48만찰나가 일??야를 이룬다. 그러니까 일찰나란 0·012초라는 얘기가 된다.
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자기 인생의 전부가 결정된다면 그처럼 무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어느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학생들에게있어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고교입시라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당연한 얘기이다.
만약에 고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되고 만다. 또 일류고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일류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러면 또 「출세」내지는 적어도 취직에의 길 마저도 막히게 된다.
이 모든게 단 하루, 이틀 사이의 시험으로 결판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짤막한 순간을 위해서 꼬박 2년이상을 하루 몇시간씩 과외수업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번장과 불안의 속박일 것이다. 잠조차 깊이 자지 못하는 어린이가 35%나 된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른들은 「스트레스」의 해소를 위해 무진 애를 쓴다. 또 어른들이「스트레스」를 풀수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로 많다.
그러나 중학생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숨돌릴 틈새도 주지않게끔 쉴사이 없이 선생들의 채찍질이 날고, 사정없이 어머니의 꾸지람이 곁을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수업준비를 한다해도 아차하는 순간의 실책으로 모든게 끝장난다.
산수시험에서 소수점 하나를 잘못 읽어도. 뜀뛰기에서 신발끈이 풀어져도 낭패를 본다.
그래서 시험에 떨어지는 경우에 받을 주위의 눈총이나 멸시를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는지, 그보다도 그 자신의 좌절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는지. 『가출하고 싶다』는 중학생이 전체의 23%니 된다는것은 기막힐 일이 아닌가.
입시의「스트레스」가 한창 발육중에 있는 어린이의 심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인지, 또 그로 인하여 얼마나 메마르고 이지러진 인격이 형성될 것인지, 그리고 또 그런 세대가 이끌게되는 내일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병패를 간직한 것인지, 소름이 끼쳐지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른들은 이런데까지 머리를 쓰고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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