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태국대사관무관 「솜루프」대령의 참전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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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2년4월부터 1년간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현재 주한태국대사관무관으로 근무중인 「아카폴·솜루프」대령(47)은 참전당시와 참전후의 태국군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참전동기와 전쟁이 끝난 후 오랫동안 주둔하게 된데 대해 .
『당시의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이 먼저 전쟁을 걸어왔기 때문에 태국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출병하게 된 것이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이상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 확고부동한 평화가 왔다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서 비교적 오랫동안 주둔하게 되었다. 태국지상군이 철수했다고는 하지만 공군일부가 아직도 「유엔」군 산하로 일본에 주둔하고 있어 한국을 지원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휴전 이후 태국군의 활동은?
『태국군은 휴전 후 계속 주둔하면서 군사적인 훈련 이외에도 대민봉사활동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생각한다. 태국군이 주둔하는 동안 한·태 양국의 문화교류 및 대민 친근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특히 대민활동으로는 고아사업 협조·소년단 활동지원·의무지원·영세민 구호 등을 들 수 있겠다.』
-태국군의 한국참전 중 특히 기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51년12월의 금화 서북쪽 「T·본·힐」전투와 52년11월 철원 서남쪽 「폭찹·힐」전투 등이다. 「폭찹」고지전에는 본인이 참전했는데 당시 미2사단은 태국군 2개 소대병력으로 적3개 대대병력을 맞아 고지를 사수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었으나 태국군은 훌륭히 이겨냈다.
당시의 보급은 엉망이었고 우선 열대지방에서 자라온 군인들로서는 적과 싸우기 전에 추위와 싸워 이기는 것도 큰 일 중의 하나였다.
특히 태국군은 죽는 한이 있어도 포로는 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군인정신이 투철하여 적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고 생각한다.』
-월남전을 계기로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태국은 월남전에도 1개 여단병력이 참전했다. 태국은 「아시아」지역에서 공산주의로부터 공동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무릅쓰고 적극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다.
한국에도 「타놈·키티카촌」현 수상의 아들 2명이 복무했었고 그밖에 부수상이나 고위 장성의 자제들이 복무했던 것을 보면 태국이 「아시아」의 자유우방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들과는 계속 공동보조를 맞추어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설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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