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1년 반 동안 21분 회의하고 해산한 국회 민간인사찰특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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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국회 국정원개혁특별조사위원회가 첫 전체회의를 연 10일. 국회 본관 220호에선 또 다른 특위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 7월 출범했던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민간인사찰특위’)였다.

 오후 1시30분쯤 위원장인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의장석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위에 꼭 참석해 달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위원 17명의 좌석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의원들이 하나 둘씩 들어왔다.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오후 1시35분 송호창 의원이 도착하면서 성원(9명)이 됐다.

 송 의원이 “(안철수 신당을 위한) 새정치추진위 일정이 있어 인사만 하겠다”며 가려고 하자 의원들이 “5분이면 된다”며 반강제로 앉히고서 회의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시간 잽니다”는 말도 나왔다.

 이날 회의는 지난해 8월 28일 위원장과 간사를 정한 뒤 두 번째 회의이자 마지막 회의다. 16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특위 활동을 종료하기 위해 소집됐다.

 ‘특위 종료’ 안건은 5분 만에 가결됐다. 특위를 만들면서 했던 모든 약속은 어겼지만 안건을 상정하면서 한 “5분 내에 끝낸다”는 약속만은 정확히 지켰다.

 민간인사찰특위는 6개월 정도의 활동시한을 정한 다른 특위와 달리 ‘본회의 의결 때까지 활동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정치 공세가 반복되며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위 활동비는 위원장에게 매달 600만원씩 지금까지 9000만원이 지급됐다. 첫 회의에서 16분, 이날 회의 5분 등 총 21분간 진행됐다. 1분당 428만원의 세금을 쓴 셈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심 위원장은 "저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실히 지켰고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모두 세비 반납 운동을 주도해왔다"며 활동비 전액을 이날 국회 사무처에 반납했다.

 19대 국회 들어서만 19개 특위가 구성됐다. 남아 있는 건 5개다. 방송공정성특위와 사법개혁특위 등 대부분이 성과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기 일쑤였다.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가 10번의 회의를 거르지 않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한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은 “당론과는 배치되지만 정치적으로 양산되는 특위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지난 6일 본회의에서 국정원개혁특위 안건에 기권했다”고 밝혔다.

 민간인사찰특위처럼 17개월 동안 21분만 회의를 하고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을 특위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남발하지 말거나 만들어 놓았으면 성과를 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특위가 무슨 정쟁의 출구전략은 아니다.

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알려왔습니다 위 취재일기와 관련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특위가 아무 성과 없이 종료됐기 때문에 지급받은 활동비 9000만원을 국회사무처에 전액 반납했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