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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겸재 정선작 청풍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겸재 정선은 서울의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자연을 매우 즐겨서 사생대상으로 삼았던 모양이다. 「인왕재색도」(손재형씨 소장) 를 비롯해서 지금의 서울 청운동 일대에 널려 있었던 계곡미를 그린 가작들이 유달리 많이 남아있다. 즉 장동팔경이라고 일컫는 일련의 대소작품군이 그것이며, 이 「청풍계도」도 바로 이 장동팔경 중의 일경을 그린 것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장동팔경 그림중에서도 이것이 가장 큰 작품이어서 소위 겸재체 진경산수가 지니는 본바탕을 흔연하게 드러내준 회심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깊다.
온 폭에 거의 하늘의 공간을 남기지 않은 대담한 화면포치법과 스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호연한 시심이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가 뭉클한 감명을 안겨 주는 것은 아마도 정을 다해서 길들인 우리 산하의 실감에서 오는 감상인지도 모른다.
거친 부벽준을 수직으로 반복해서 단숨에 그려 내린 겸재체 독자적인 준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암벽들과, 단층을 이루면서 다급하게 높아지는 대지와, 암벽 위에 치솟은 장송들, 그리고 이름 모를 교목들의 우람한 풍자는 화폭의 중앙부 거의 저변에 그려진 작은 인물과 나귀의 크기에 대조돼서 이 청풍계의 깊고 그윽한 풍치를 실감나게 해주고 있다.
농담을 가려 쓴 묵색주조의 화폭전면에 담록색으로 담담한 설채가 있으나 화면저변에 작게 그려진 나귀의 안장만은 선명한 청록을 설채해서 뚜렷한 「액선트」를 이룬 것이 주의를 끌만하다. 겸재의 산수화에는 간혹 이러한 생채의 효과를 노린 기도가 발견된다.
화면의 우상단에 「기미춘사 겸재」라 한 관식이 있어서 이 작품이 겸재의 63세 작인 것을 알 수 있으며 그의 63세는 1739년으로서 영조왕15년에 해당된다.
겸재는 84수를 누리면서 만년에도 돋보기를 겹겹이 받쳐 쓰고서 끝내 정력적인 작가생활을 했다고 그의 63세야말로 바야흐로 그의 예술의 원숙한 결실기에 들어서는 때 였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제작 연기와 아울러 그의 기념될만한 걸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최순우(국립박물관학술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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