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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익 주간지에 대처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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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1“(아베 신조 총리의 주장처럼) 미국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알링턴 묘지 헌화와 같다고 보고 있을까. 워싱턴에서 취재한 그 대답은 ‘노(no)’에 가깝다…국제적으로 야스쿠니는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외교문제를 일으키는 종교시설’이다…이제 일본인 자신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

 1일 요미우리에 실린 특파원 칼럼 ‘야스쿠니는 알링턴일까’의 일부다. 보수지인 요미우리에서 모처럼 찾아낸 공감 100%의 글이었다.

 #2.“1994년부터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사진가 권철씨가 재작년 87세로 숨을 거둔 일본인 한센병 환자 시인의 삶을 담은 사진집을 발표했다. 올해 고단샤출판문화상을 받은 권철은 97년 한센병 요양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2일자 아사히신문에 실린 한국인 사진가의 미담 기사다. ‘나도 아는 사람인데, 이런 면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생각이 스치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됐다.

 출근길 비좁은 전철 속에서 일본의 신문을 읽는 건 도쿄 특파원에겐 일상이다. 한·일 관계가 험악한 최근엔 앞서 소개한 유의 기사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말 신문 속에 비친 일본은 매체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아베 총리가 공들인 특정비밀보호법도 그렇다. 각료가 지정한 특정비밀을 누설한 공무원을 최고 징역 10년에 처하는 법, 아사히나 도쿄신문 등 진보지의 시각에선 ‘민주주의의 목을 조르는 희대의 악법’이다. 하지만 보수지 요미우리는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다수결 원칙을 부정하는 게 이상하다”며 야당을 비난하고 오히려 아베를 두둔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 개선을 바라는 신문도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악의적인 기획에 매일같이 열중하는 신문도 있다.

  일본 신문끼리도 이렇게 다른데, 한국 언론과의 거리감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격납용기에서 오염수가 새고 있는 장면을 로봇 카메라로 촬영했다. 일본 언론들은 “새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위치가 확인된 것은 처음, 1보 전진”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언론엔 그동안 몰랐던 누수가 발견돼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보도됐다. 현해탄을 건너 희극이 비극으로 바뀐 케이스다.

 최근 한국에선 일본 우익 주간지들의 보도가 연거푸 화제가 됐다. 매상을 노리고 한국 때리기를 일삼는 주간지까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양국 간 시각차는 이미 너무나 크다. 이런 보도에 혈압을 올리고 힘을 빼는 건 양국 관계가 좋아질까 불안해하며 우익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꼴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악담을 퍼뜨리는 아줌마 외교를 한다’고 헐뜯은 보도에 ‘청와대 관계자’가 “막말과 막글은 부끄러운 일이고 스스로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갈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아예 아무 말 없이 무시했다면 해당 주간지의 힘이 더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