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남해군수의 '번지점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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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은 조각(組閣) 배경을 설명하면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해 "지방자치의 오리지널…, 이미 많은 사람에게 검증된 우수한 자원"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발탁이 지나친 파격이란 지적에 대해선 "인사가 파격이 아니라 그것을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이 타성에 젖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찌감치 장관감으로 점을 찍어뒀던 그에 대한 盧대통령의 신뢰를 짐작케 한다. 언론에서도 경남 남해 시골의 이장을 거쳐 군수를 지낸 경력 등이 부각되며 '세상을 뒤집은 이장님'으로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金장관은 언론과 야당으로부터 "선거법 위반 전과자가 선거 주무부서 장관으로 적합한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남해군수에 당선된 뒤에도 서류상 남해신문 대표를 8개월간 보유해 공무원 겸직 금지 규정을 위반했고, 남해군수 선거 때는 상대 후보 비방에 남해신문을 이용한 혐의로 벌금 80만원이 확정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金장관은 자신의 무관함을 해명하고 있지만, 야당 측은 상임위에서 '인사청문회에 준하는' 엄격한 검증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金장관은 '백성은 가난한 것에 분노하기보다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뒤늦게 사회 현실에 눈을 뜬 뒤 신념으로 인생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盧대통령과 닮은 데가 많다.

고향에선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남해군수 시절이던 지난해 3월 정지환씨와 함께 쓴 '남해군수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책을 보면 盧대통령이 왜 그를 '변화를 추동할 인재'로 택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최연소 단체장(95년 당시 36세)으로 당선돼 재임 7년 동안 펼친 기자실 개방, 민원 공개 법정 도입, 스포츠 마케팅, 생태주의 행정 등 金장관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개혁 실천 과정은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불법묘지와 전쟁'을 벌여 남해군을 장묘 문화 개선의 선도지역으로 탈바꿈시킨 일은 전국적인 성공사례로 꼽혔다.

농어촌 어느 곳을 가든 '묘지 강산'으로 바뀌고 있는 판에 남해군은 불법묘지 조성이 1% 미만이고 화장장을 설치해도 좋다는 마을이 세곳이나 된다고 한다. 지자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그에 따라 주민 의식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盧대통령이 金장관을 기용한 것은 무엇보다 풀뿌리 자치혁명의 경험을 살려 지방 분권의 과제를 수행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金장관의 목소리는 이렇다. "한국 지방자치는 1할7푼짜리라는 말이 있다. 국가 사무 가운데 지방정부에 이양된 권한이 17%에 불과하고, 인사와 예산 운용 등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남해대교에 칠하는 색깔조차도 지자체가 결정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남해군은 관광도시 이미지에 맞게 빨간색을 원했지만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회색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한국 사회와 정치의 희망도,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도 지방자치와 분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는 중앙집권체제에 대항해 지방에서 '아름다운 반란'을 준비하자고 주장했다.

지방 분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권과 중앙 관료집단이다. 金장관은 이제 스스로 호랑이굴에 들어온 셈이다. 손에 쥔 권한을 내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과거 정권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대구 지하철 사고가 터지자 지하철 운영을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국무회의에서 나오는 판이다. 한편으론 '서울에 가면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씻어야 한다. 金장관이 이 난관들을 어떻게 헤쳐갈지 궁금하다.

한천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