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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 맞선 남북한 학자들|일본 나량 고송총 입실 조사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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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랑=박동순 특파원】4일 상오에 한국 학자, 하오에 북한 학자가 각각 나량 고송 총을 직접 답사 관찰하고 각각 소감을 밝혔다.
김원용 박사(서울대 박물관장)는『많은 새 사실을 확인, 결론을 내릴만한 충분한 근거를 보았다』고 말했으며 북한측의 김석형 및 주영헌은『훌륭한 문화재이다. 전파된 문학의 모습을 뚜렷이 파악했다』고 말함으로써 이곳「아쓰까」고분에 비친 문화의 양식이 한반도의 영향을 뚜렷이 지니고 있는 점을 한결같이 피력했다.
그러나 남북한 학자들 사이에는 견해의 세부 및 태도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김재원 김원용 최순우 이기백씨 등 한국 측 학자들은『학문의 세계는 과학적 추적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논의해야한다』는 점에서 선입관이나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길 조심하는데 비하여, 북한측에서 고구려 벽화 고분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준비해 와 뿌리면서「다까마쓰」총 벽화가 고구려와 직결된 것으로 주장, 다분히 정치적 공세와 선전을 수반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주영헌은『「다까마쓰」총은「나라」일대 고분군의 하나에 불과하므로 그 전부를 발굴해 일본 고대사를 전면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의함으로써 일본에서 꺼리고 있는 천황의 능묘발굴을 지적하기도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고구려 고분에 대한 연대 실점이 이미 가능해졌다고 말하면서 고구려 문화가 배를 타고 나량에 건너간 것처럼 직접적인 이식을 주장했다.
그는「다까마쓰」총을 관찰하고 나서 ①남녀인물을 따로 그렸고 ②천장 성좌도의 금박 ③복식과 머리모양 ④돌을 다듬어 회칠한 위에 숯으로「디자인」해 채색했고 ⑤동서 벽의 일월 및 성좌의 배치 ⑥흙을 켜켜로 다져 무덤을 축조 ⑦풍속 인물도의·군상과 원근법 ⑧의도가 없는 석곽 고분 양식 등이 모두 고구려 고분의 특징이며 일반적 경향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 박물관장 김원용 박사는 북한 학자들처럼 성급한 결론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이곳 고분 벽화가 당나라 양식도 아니며 외국의 고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 고분이었다』고 하면서 흡사 거창의 벽화고분(고려 때)에 들어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연도가 없는 고분 양식은 백제와 신라 때는 물론 고려 때까지 전승돼 왔으며 흙을 켜켜로 밟아 쌓는 양식도 한반도의 고분 토성의 일반적 수법임을 지적했다.
또한 최형우씨는 고구려와 직결한다고 하기보다는 고구려의 문화·양식이 백제·나랑·신라를 거쳐 한번 여과돼 갔으리라는 평소의 생각을 이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원용 박사는 5일 하오 2시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한 결론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나량=박동순 특파원】「아스까」(명일향) 고분 벽화종합 학술조사에 초청되어 4일 입실조사를 끝낸 남북한 역사·고고학자들은 이날 밤「나라」(나량)「호텔」에서 열린「리셉션」에서 처음 악수를 나누었다.
조사현장에는 일본의 극우국수주의 단체인 국수회 20여명이 「헬메트」를 쓰고 남북한 학자들의 조사에 반대하는 전단을 뿌리며「데모」를 벌였다. 이들은『일본의 민족의식을 상실시키려는 사이비 학자를 추방하라』고 주장하며「스피커」를 장치한 자동차에서「아리랑」·「황성옛터」·「노란 샤쓰」등 한국 노래를 방송하며 기승을 부렸다.
가슴에 김일성「배지」를 달고있는 북한 학자들은 이에 당황, 조련계 1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이들을 피해 뒷길로 고분에 들어섰다. 한국 대표들은 혹 고분내부가 오염될까봐 흰 「가운」을 입고 조사한 데 반해 북한 대표들은 평상시의 복장 그대로 들어가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이날 저녁 나량「호텔」의「리셉션」은 7시 예정이었으나 북한 학자들의 지각으로 약간 늦게 시작했다. 일본 학자 40여명도 참석한「리셉션」에서「아다찌」(족입건이) 일본 문화청 장관은『고분의 해명에 협력한 남북한 학자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동「아시아」동일 문화권의 학술 교류를 보다 활발화시키고 싶다』고 환영인사를 했다.
이 동안 남북학자들은 약간 긴장된 채 따로따로 서 있다가 인사, 김재원씨와 북한사회 과학원 역사 연구소장인 김석형이 악수하며 말을 건넸다. 김재원씨가 『먼데서 오느라 수고했습니다』고 말하자 김석형은 『이국 땅에서 이렇게 라도 만나니 반갑습니다』고 받았다. 두 사람의 악수에「카메라맨」들이 한번 더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김석형이 다시 손을 잡고 높이 쳐들었다. 김 박사는 이에『권투선수도 아닌데』하며 자연스레 손을 흔들었다.
「아다찌」장관의 건배로 맥주를 마시고 난 다음 남북학자들 사이에 대화가 오갔다. 김원용 교수는 옛 경성 제대의 선배인 김석형에게『당신의 논문을 일역 판으로 보았다』고 말을 건네며 환담을 나누었다.
김원용씨는 주영헌에게『꼭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다. 당신 책을 일역 판으로 보았는데 사진이 선명치 않더라』고 말하자, 주는『이번에「칼라」로 선명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석형은 서울에 친지가 있느냐는 이기백 교수의 물음에 유홍렬 교수 등 동창이 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날 밤 8시30분에는 NTV를 위한 좌담회 녹화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김철호는 좌담회가 끝났다는 사회자의 선언에도 불구하고「평화 통일」 운운하는 정치적 발언들을 하여 주최측을 당황케 했다.
이번 학술조사에서 북한측은 선전에 무척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얼마 전 중공 측이 장사 고분 발굴 사진을 조일 신문에만 주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것처럼 북한 학자들도 도착 즉시「조일 신문」에 사진20여장을 주어 4일자 석간1면에「톱」기사로 나가는 한편 3면 화보에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하여 중공의 선전 수법을 연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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