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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등수 없앤 연세대 의대를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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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세대 의대가 내년 본과 1학년부터 A+부터 F까지 매겨지는 13등급 학점과 등수를 없애고 전 과목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이런 시도는 연세대 의대가 처음이라고 한다. 대학 측은 학생들의 팀 협력 능력, 연구력, 재학 중 교내외 활동 기록 등을 담은 포트폴리오로 평가하는 방식도 내놨다. 이는 초등학교 이후 중·고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상대평가와 등수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우리 교육 풍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사가 갖춰야 할 능력은 해당 전공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이 아니다. 환자·환자 가족·동료·타 보건의료 분야 종사자 등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엄격한 윤리의식과 신뢰·존경을 받을 수 있는 품성 등이 더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지금껏 우리나라 의대의 선발방식과 의사 양성 과정은 이러한 소양과 능력을 길러내는 데 소홀했다. 성적으로 선발하고, 점수로 재단하다 보니 의료 기술자만 배출했을 뿐 인술(仁術)을 갖춘 의사를 길러내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평가방식은 초·중·고교에 이르기까지 점수 경쟁에 찌든 학생들에게 팀 협력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제는 동료를 밟고 이겨야 할 경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협력해 함께 성과를 내는 동반자로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혁신적 방법은 시행 과정에서 공정성과 신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대학 측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평가 방법이 바뀐다고 본과 이후 의대생들이 선호하는 전공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 개개인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다양한 소질과 성장과정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교수 개인의 주관적 성향 등에 의해 평가가 좌지우지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경쟁이 낙오자를 양산하는 게 아니라 참여자 간 선의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세대 의대의 시도가 타 분야에도 확산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