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웬지(?) 좋은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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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첫눈이 내리는 오늘은 웬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 사극에는 길라잡이가 행렬 앞에서 ‘물럿거라’ 소리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먼저 출발했지만 육상 선수 출신인 그는 금새 나를 따라잡았다”. 앞의 세 예문에서 ‘웬지’ ‘물럿거라’ ‘금새’는 바른 표현일까. 이렇게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잘못된 것이다.

 이 경우의 ‘웬지’ ‘물럿거라’ ‘금새’는 ‘왠지’ ‘물렀거라’ ‘금세’로 쓰는 것이 옳다. 이들은 모두 원래의 말에서 줄어든 형태인데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알고 있으면 잘못 쓸 가능성도 줄어든다.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본딧말에서 줄어들더라도 하나의 개념을 하나의 형태로 일관되게 표기하는 것이 한글 맞춤법의 원칙이므로 ‘왜인지’가 줄어들더라도 ‘왜’라는 개념은 살아있어야 한다. 따라서 ‘웬지’가 아니라 ‘왠지’가 바르다. ‘웬’은 “아이구, 어머니 이게 웬 날벼락이에요?” “저기 조그만 건물 모퉁이에 웬 사람이 있어”에서 보듯 ‘어찌된’ ‘어떠한’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웬걸’은 ‘웬 것을’에서 줄어든 표현으로서 ‘왜’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므로 ‘왠걸’로 적어서는 안 된다.

 ‘물렀거라’는 ‘물러 있거라’에서 줄어든 말이다. 행차에 방해가 되니 물러나 있으라는 것이다. ‘물럿거라’가 아니라 ‘물렀거라’처럼 받침을 쌍시옷으로 적는 것은 ‘있거라’에서 왔음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섰거라’ ‘옜다’ ‘밭사돈’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섰거라’는 ‘서 있거라’에서 온 말이고, ‘옜다’는 ‘예(여기) 있다’에서 온 것이어서 ‘있’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섯거라’ ‘옛다’ 형태가 될 수 없다. ‘밭사돈’은 ‘바깥사돈’에서 줄어든 말이기 때문에 ‘받사돈’이 아니라 ‘ㅌ’을 살려 ‘밭사돈’이 된다.

 ‘금세’는 ‘지금 바로’란 뜻으로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다. 따라서 ‘에’의 형태가 살아있어야 하므로 ‘금새’로 적지 않는다. 금새는 ‘물건의 값’ ‘물건값의 비싸고 싼 정도’라는 의미여서 뜻이 완전히 다르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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