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세력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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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5월의「모스크바」정상회담에서 미-소는 양국간에 적극적인 평화공존관계를 설정할 것을 다짐함과 동시에 현상동결의 토대 위에서「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성숙시켜 나갈 것을 약속했다. 「유럽」의 평화와 안정의 성숙은 소련으로 하여금 그 전통적인「동서양면동시작전 회피전략」을 주효케 했다. 이로 말미암아 소련은 그 군사력의 중요한 부분을「아시아」방면에 집중 투입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소련의 방대한 지상군병력이 중-소 국경선에 집중 배치되어 이 역시 방대한 지상군을 갖고 있는 중공에 대한 군사적인 압력을 가하리라는 것은 상상을 하고도 남는 일인데, 이러한 상상은 중-소 관계가 더 한층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신빙성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문제는 소련의 해군세력인데, 질과 양에 있어서 이미 미국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하는 소련의 해군력의 중요한 부분이 인도양을 거쳐 남지나해 방면에 진출한다고 하면, 이는 비단 중공에 대해서만이 아니라「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사력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60년대 미-소는 평화공존의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급진적인 현상타파를 원하는 중공에 대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사실상 중공을 공동 포위하는 태세를 취해 왔었다. 이 공동포위 태세에 있어서 육상으로부터의 포위임무는 소련이 맡았고, 해상으로부터의 포위임무는 미국이 맡아왔음은 가릴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닉슨·독트린」의 전개, 대 중공화해 접근경향 등은 미국으로 하여금 해상으로부터의 대 중공포위 임무를 포기하는 결과들 가져왔다. 대 중공 포위망에서 미국의 탈락이라는 극적인 상황변화에 대비키 위해 소련은 중공과 화해하여 군사적 압력을 해제해 주든 가, 혹은 단독으로 지금까지 미국이 맡았던 역할까지를 도맡아 가지고 중공을 계속 포위하든 가, 양자택일할 수 있는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가까운 시일 안에 대 중공관계개선이 무망한 것으로 판단한 소련은 주로 후자의 길을 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미국이「아시아」에 배치한 군사력-주로 중공주변 국가에 배치하고 있는 군사력을 급속히 또한 대량으로 철수시켜 그 자리를 소련의 군사력으로 메우게 한다면, 중공은 그 안전보장에 있어 현실적으로 중대한 위력을 받게 된다. 그 뿐더러 중공주변국가로부터 주둔 미군을 급속히 대량 철수시킨다는 것은 중공의 판단으로는 이미 부활했다고 보고있는 일본군국주의 세력이 미국군사력에 대신하여 진출할 수 있는 조건을 성숙시켜 줄 것이기 때문에 중공은 이에 대한 경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여기 중공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3대 핵 국가사이의 세력균형을 위해 미군사력의 급속한 후퇴나 약화를 원치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10일「워싱턴」으로부터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하원의 두 원내총무가 최근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그들은 중공고위관사들이「아시아」에 있어서의 미국의 군사력이 소련에 비하여 약화되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중공은 현재 및 장래에 있어서 미국의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의 철수는 이 지역의 불안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한다. 중공고위관사의 이와 같은 견해표명은 소련의 군사적 압력 강화에 대한 의구심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며, 적어도 당분간은「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사력이 그냥 남아서, 소련 해군세력의 진출을 막아 줄 것을 바라는 희망의 전시이다.
동「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사력이 중공에 대한 위협이 되기는 고사코, 동「아시아」에 있어서 세력균형을 이루어 전쟁의 발생을 억제하고 안정과 안전을 촉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은 현재로는 누구도 시인을 아끼지 못할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국은 성급히「닉슨·독트린」의 실천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안정과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그냥 남아있는 것이 평화에 대한 공헌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의 존재가치도 이런 점에서 재고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중공이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주한미군철수의 주장을 내세우는 의도를 알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겉치레 변장들은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한국의 평화를 위해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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