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밥상] ‘감동무젓김치’ 이름이 재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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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귀하던 시절, 김장김치는 겨우내 온 식구가 먹을 반찬이었다. 입동(立冬)이 다가오면 자연히 김장준비를 했다. 겨울이 빠른 산간지방은 11월 초순에, 따뜻한 남부지방은 12월 중순에야 김장을 담갔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배추 수백 포기씩 김장을 했다. 품이 많이 들어, 이웃끼리 품앗이를 할 정도였다. 돼지고기 두어 근 삶아두는 게 주인의 성의였다. 지칠 때면 그걸 배추속에 싸먹었다. 벌건 김치 양념을 척 올리거나 갓 담근 김장김치를 쭉 찢어 곁들였다.

이제는 거반 사라져가는 풍경이지만, 김장김치 하면 입에 침부터 고이는 건 김치 맛이 우리네 DNA에 인이 박혀 있기 때문일 테다. 우리 민족이 김치를 먹은 역사는 무려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장김치만 해도 그 종류가 사투리 이상으로 다양하다. 기후와 지형에 따라 속재료와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국 진미가 모여드는 서울·경기도 김치는 담백하고 뒷맛이 깨끗하다. 서울에는 낙지·전복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김치도 전한다. 이름이 재밌다. ‘감동무젓김치’. 새우보다 작고 맛이 진한 자하(곤쟁이) 젓갈로 담가 푹 삭혀 먹는 깍두기다. 원래 ‘곤쟁이젓 깍두기’쯤으로 불리던 걸 조선의 한 임금이 먹고 감동받아 새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전라도 김치는 고춧가루 대신 마른 고추를 불려 갈아 써서 진한 감칠맛을 내고, 경상도는 생강 없이 주로 멸치젓을 사용하는 게 특징. 충청도는 국내 유일의 천연 탄산수 초정약수로 톡 쏘는 동치미를 만든다.

강원도 김치에는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다. 양념부터 굴, 생오징어채, 말린 생태알 따위를 넣는다. 특히 양양의 명태김치가 독특하다. 액젓 대신 명태살을 푹 고은 진국을 쓰고 싱싱한 명태를 뼈째 썰어 속을 채운다. 김치에 박아둔 명태는 일주일 정도 삭혀 먹는 게 제 맛. 쫀득한 식감과 강렬한 명태 향이 절로 밥을 부르는 별미다.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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