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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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나라 말로 문장을 쓸 때에는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생략되지 않더라도 주어가 객어 뒤에 가는 경우가 많다.
외국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 주어가 뒤에 가는 경우도 적다.
그것은 외국인에 비해서 한국인들은 자아나 주체성을 의식하는 강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나」를 내세우기에는 너무 겸허한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런 풀이가 맞은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거리의 간판에서는 그런 느낌이 든다.
우리처럼 간판을 즐기는 나라도 드물다. 어디를 가나 간판들뿐이다. 꼭 간판 속에 묻힌 도시 같기만 하다.
가령 5층 건물이라면 각 층마다의 간판이 건물을 뒤덮는다. 단층집인 경우에도 집보다 더 큰 간판이 지붕에 붙어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빈 공간만 있으면 모두 간판이 붙는다. 전주까지도 그냥 두지 않는다. 서로 남의 집 것보다 더 돋보이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간판은 더욱 커지고 속악하게 채색된다. 서양에서는 간판의 크기는 매우 작은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간판이 많이 붙어도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가 않는다. 크지 않다고 눈을 끌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가령 스위스나 디롤 지방, 또는 독일의 간판들을 보라. 「빵」가게는 「빵」의 모습을 그린 귀여운 자그마한 간판을 내걸고 있다. 식육점은 새끼돼지의 애교 있는 모습을 간판으로 달고 있다. 이발소는 대개 은색의 둥근 간판을 판다. 레스토랑들은 여러 가지 맥주 마크가 든 간판을 내걸고 있다. 그것도 까딱하면 그냥 지나쳐 버릴 만큼 작은 간판이다. 열쇠 공장은 큰 열쇠 모양을 간판 대신 붙여 놓는다. 인스부르크의 한 식료품 수입상은 배와 식품의 그림을 그려서 보이고 있다.
큰 간판에만 익은 우리가 보기에는 장사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만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저버리고 있는 사실이 있다. 간판만 속악하게 크면 거기서 파는 상품도 그만큼 속악하리라는 느낌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사실 귀엽고 아름다운 간판일수록 더욱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 쉬운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에서는 외국인의 출입이 잦은 업소의 간판을 한글 이외에 영문과 한문도 함께 쓰도록 지시한 모양이다.
편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간판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더 속악해질 수도 있다.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더 외국인 고객을 끌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도 큰 오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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