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SNS에서 저주의 굿판을 집어치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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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가까운 사람의 출산소식을 휴대전화로 받은 것이. 어제는 문자(단문서비스)를 통해 날아들었다. 아이 아빠가 강보에 싸인 딸 사진과 함께 ‘딸 바보가 된 심정’을 보내왔다. 한 주 전에는 갓 출산한 아이 엄마가 몸을 추스르자마자 올린 아이 사진과 인사말을 국내 유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해왔다. 지난달 말에는 아이 아빠가 분만실에서 찍어 글로벌 SNS에 올린 동영상으로 소식을 확인했다. 기다란 탯줄을 그대로 단 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사진은 예술영화 같았다.

 SNS 공간에선 최근 이처럼 정겨운 장면이 갈수록 자주 눈에 띈다. 아름다운 소통의 공간이 돼가는 느낌이다. 출산뿐 아니다. 아이 사진을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올리며 SNS를 육아 디지털 앨범으로 삼는 젊은 부모도 수두룩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고 새로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작가와 연출가가 따로 필요 없는 SNS 드라마다. SNS는 이제 연애와 결혼에서도 필수품이다. 지난 주말 결혼식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아뿔싸, 장소가 가물가물했다. 청첩장은 사무실에 있었고. 다행히 휴대전화로 SNS를 뒤져 신랑신부가 올린 디지털 청첩장을 가까스로 찾아 식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디지털 청첩장에 성장과정과 연애시절 사진을 편집해 두 사람의 배경과 사귄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놨다. 둘은 심지어 그날 저녁 해외 신혼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무사 도착, 허니문 베이비 작전 돌입’이란 앙증맞은 제목까지 붙여놨다.

 지난주에는 SNS 쪽지를 통해 한동안 못 봤던 후배의 소식을 알게 됐다. 미국에 일자리를 구해 한국을 떠나게 됐는데 이번 주말 맥줏집에서 이별파티를 하니 올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사이버 쪽지 안에는 떠나는 친구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표시하는 사적 공간도 있었고 참석 여부를 표시하는 공적 공간도 있었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은 갈수록 가슴 따듯한 인간적 공간이 돼 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온갖 막말과 거친 생각으로 살풍경했던 디지털 세상의 놀라운 변신이다. 누구의 간섭이나 지침 없이 서로 자율적으로 만든 집단지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눈길이 간다. 국민의 진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SNS 공간은 정화되고 있어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몇몇 정치 누리꾼과 현실 정치권이 지나치게 과거와 대선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한발도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인간적인 따스함까지 갖추고 있는 SNS에서 더 이상 저주의 굿판은 필요 없다. 그게 누리꾼, 나아가 국민의 바람이지 않을까.

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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