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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애써 키워놨더니 가게 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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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심사하는 ‘관세법 개정안’이 논란이다.

 이미 대기업의 면세점 매장 수를 제한하는 관세법 시행령이 이달 5일 발효되기 시작했다. 점포 수 기준으로 대기업이 전체 중 60% 미만, 중소·중견기업은 2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대기업 52.8%, 중소·중견 19.4%여서 이 시행령만으로도 대기업은 신규 매장을 못 따는 수준이다. 그런데 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규제 효과가 크지 않다”며 면적 기준으로 점유율을 따지고 대기업 점유율 상한도 60%에서 50%로 낮추는 법안을 재발의한 것이다.

 이 법이 본회의를 거쳐 확정되면 신라·롯데 등 대기업 면세점 사업자들은 내년 1월부터 허가가 만료되는 기존 매장 중 일부를 내놔야 한다. 애써 몇 년 동안 상권을 키워놨더니 건물주가 갑자기 가게를 빼라는 격이다.

 면세점의 대기업 장악력이 높아진 것은 시장에 뛰어든 중소·중견기업들이 포기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3300㎡(약 1000평)짜리 매장 한 곳을 여는 데 약 420억원의 초기 투자가 든다. 높은 브랜드 유치 장벽도 업의 특성이다. 100% 직매입해야 해 재고 부담도 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통신망도 대기업 3사가 장악하고 있으니 빼앗아 중소·중견기업에 나눠줘야 하나.

 국내 면세점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인도네시아·괌·싱가포르에도 활발히 진출 중이다. 가격도 중국 면세점보다 30%, 일본보다 15%, 홍콩·마카오보다 5% 싸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한 활동이 쇼핑(73%)이었고, 이 중 가장 선호하는 쇼핑 장소가 면세점(46%)이었다. 중국 관광객이 지난해 롯데면세점에서 쓰고 간 돈만 한 명당 평균 400달러였다. 면세점 수수료로 영세 여행사들이 적자를 보전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관세법 개정의 핵심은 관광 진흥과 면세점산업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