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조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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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54년 김정숙씨가 홍대 미대를 졸업한 뒤 시작된 여류조각가의 활동은 그동안 3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 첫걸음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미술협회의 조각분과에 등록된 조각가는 l백여명인데 그중 여성은 10여명 안팎이다.
그중 김정숙씨(홍대 조소과 교수) 윤영자씨(서라벌예대·경희대강사) 김윤신씨(청주여대교수)등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작품활동을 하고있고 개인화실을 마련한 사람도 최효주양(이대대학원졸)등 몇명 있다.
점토를 빚고 돌과 나무를 깎아 물질에 형상을 주는 창조적 직업인 조각가는 자신의 사상, 사념에 따라 주재를 선택하여 작품을 완성하려면 일종의 기술까지 터득해야하는 힘든 직업이다.
창조라는 어려움에다 동이의 다른 재료(석고·나무·돌·철·「스텐인리스」「폴리에스터·유리」)를 사용할 경우 복잡한 제조과정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기술(나무 깎기 용접 등)이라는 문제가 뒤따르므로 여성으로선 육체적으로도 벅차다는 것.
그러나 김정숙교수는『하고 싶은 것을 하는 기쁨, 창작하는 즐거움 때문에 조각을 한다』 고 말하며 조각을 시작하려면 무엇보다도 작업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각가를 배출하는 곳은 현재 이대미대, 서울대미술대, 홍대 미대의 조소과 세 곳으로 해마다 평균 60여명의 졸업생이 나오고 있다. 이대는 30여명의 졸업생이 모두 여성이고 다른 두 대학도 졸업생 중 60%가 여성으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조각가로 계속 활동을 하는 여성이 드문 것을 보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졸업 후 조각가가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중·고등학교의 미술교사로, 혹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방법이 있고 간혹 큰 보석상회에서 「트로피」를 제작하는 직원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초봉은 3만5천원∼4만원선.
그 외 개인화실을 마련하여 계속 작품을 만들려면 집세와 재료구입에만도 한 달에 3만원 가량이 드는데 제작한 작품을 팔려는 것은 염두도 못 내고 조소과 지망의 대학 입시생을 지도하는 부업을 가질 정도이다. 이처럼 취업의 기회도 거의 없고 작품을 팔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지 못한 것이 조각가의 실정이지만 앞으로는 나아질 전망이 보인다.
그것은 조각이 회화보다 가격이 비싸며 파손의 위험이 있어 운반이 불편하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애국선열이나 학교설립자의 동상을 세우려는 풍조가 생겼다는 것과 일반가정에서 정원이나 응접실 장식에 조각을 사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경기고교의 4·19기념탑을 제작한 윤영자씨도 『인물동상, 흉상, 기념관과 기념비, 공공건물의 벽면부조, 정원의 조각, 응접실의 장식용 소품이 모두 조각품들이다.
이처럼 조각품이 쓰이는 범위가 늘어나므로 조각가가 설 위치도 확고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조각가로「데뷔」하는 길은 국전이나 공보부 주최의 신인미술전에 응모하는 것과 개인전을 여는 두 가지가 있다. 국전에 입선하는 여류조각가가 드물기 때문에 국전을 거치면 화려한 「데뷔」가 약속되는 셈이고 개인전을 갖는 경우에는 최소한 2백만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데뷔」후에는 작품의뢰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데 2백만∼3백만원 짜리 작품인 경우 수입은 25%정도이고 소품은 1만5천∼30만원까지에 매매된다.
물론 작품제작에 쏟은 애정과 노력, 재료값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작품보급에 치중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헐한 값으로 화랑에 판매의뢰를 하는 수도 있다. 이때는 화랑에서 3할 가량을 떼는데 추상조각보다는 대리석이나 목각을 소재로 한 구상 쪽의 사실적인 조각이 환영을 받는다. <박금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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