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제자는 『해서음행일기』의 표지>숙종 때 암행어사 박만정의 행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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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월28일계속>
저녁에 신천 중령방풍지관 마을에 이르러 하룻밤 투숙코자 하나 마을사람들이 모두 이 핑계 저 핑계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한집에서는 불문곡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주인의 태도가 여간 불공스러운게 아니었다. 잠시 후에 밖으로부터 한사람이 들어와 보기에 상민 같지는 않은데 자칭 생원이라고 하며 내 앞으로 다가와 절까지 하고 묻기를 손님께서는 어디서 오시며 무슨 일로 여행하느냐고 했다.

<걸식 행각중이요>
『생계가 하도 핍박하여 관서지방의 알만한 수령들한테 걸식할까하고 길을 떠났다가 이 곳을 지나게 되었다오.』
『관서지방도 흉황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곳을 가도 이로울 것이 없을 겁니다.』
『그렇기로서니 식량을 가지고 온 길손조차 접대하지 않으려 하니 이 곳 인심이 어떻게 이토록 무참할 수 있단 말이요.』『흉년의 인사란 여느 때의 그것에 견주어 책망할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지요. 더구나 이곳은 사면이 모두 들판이라서 땔나무가 매우 귀하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손님 접대하기를 여간 꺼리지 않는 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하지만 기왕에 오신 손님을 어찌 하겠읍니까』하고 주인을 불러 나무를 꾸는 한이 있더라도 좋이 모시는 것이 도리에 옳은 것이라고 타일렀다.
밤이 깊어서야 저녁밥을 먹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름은 정주요 문화원유라고 했다(문화는 현 신천군 문화면) .

<밭 가운데 우는 남자>

<3월29일>
흐리고 저녁나절 비가 오다. 신천쪽 어을아항방장천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밭 가운데 서서 우는 사내가 있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다음과 같은 사연을 이야기했다.
『본래 서울 반송계(서대문 밖)에 사는 유기장이(유기장)로서 흉년을 당해 일이 전혀 안되기 때문에 재령에 내려왔다. 그런데 이 고장 수령이 호적이 없다고 하여 구휼대상명부에 그를 포함시키지 않아 별수 없이 아는 사람들을 찾아 가까스로 걸식행각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마저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지경이 되어 마지막으로 신천에 사는 족인을 찾아가는 길인데 굶은 지가 벌써 이틀이 지나 배고파 걷지 못하고 울고 있읍니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참상은 지나는 곳마다 마주쳤고 거지와 어린것들이 길가에 즐비하여 보기에 참담하였다.

<내가 돌아 본 황해도의 굶주리는 백성들이 그나마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조정에서 특별히 간수해온 곡식을 풀어 나눠주고 혹은 징수하는 것을 감해주는 등 창구의 은택 때문이라 할 것이다.< p>

<보리조차 동이 나고>
그러나 지금 보리가 여물지도 않았으니 하물며 추수기까지는 너무도 요원하다. 만약 관아에서 베푸는 진곡 마저 떨어졌을 때 종맥(씨앗으로 남긴 보리)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구차하나마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어먹으며 다니는 사람들은 도저히 얻어먹을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보리도 떨어지고 햇곡도 나오기 전에 관수미 마저 동이나버려 백성들이 입에 풀칠할 아무것도 없다면 과연 어찌하겠는가.
그때는 농토를 아무리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이며 백성들은 길고 긴 여름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전날에 나라에서 베푼 진구의 공도 끝내 허사가 되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각 고을에는 모두 민간의 사사로운 대동계(향민들이 곡식을 거두어놓고 상부상조하는 계 제도)가있다. 또 그런 조직이 없는 고을이라도 자수청(지방관아의 정부미보관소)이 있어 아주 위급한 때에 대처하기 위해 전곡을 비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신(황해도 감사)으로 하여금 각 고을수령들에게 분부하여 현재 간수하고있는 전곡을 요령껏 출급케함으로써 굶주린 백성들의 삶의 길을 보장하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민정보고서 「별인」에서 발췌>

<저녁 비는 내리는데>
저녁때 당탄을 건너 봉산 서쪽 나탄신촌에 이르니 또 비까지 처적처적 내렸다. 내가 든 집 노인은 8, 9세 가량의 어린애를 안고 있어 손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라 했다. 그 노인의 나이에 어린 자식이 있음을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내 나이 지금 61인데 52세에 이 자식을 얻어 손자 같기도 하여 더욱 귀엽지요. 』나는 부인이 젊은 모양이라고 하니 부인도 51세에 이 아이를 출산 했노라는 것이었다. <계속><이봉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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