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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 돋보이는 코펜하겐 관광객 2배로 늘린 말레이시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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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14면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

해외 도시·공공기관 슬로건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도시 브랜딩에 처음부터 성공한 도시는 없다. 1975년 경기침체에 시달리던 뉴욕도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I♥NY’를 내놓으면서 처음 대박이 났다. 뉴욕시는 이 로고 저작권을 포기했다. 대신 전 세계로 확산을 유도해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했다.

비영어 문화권에서 영어 슬로건은 골치 아픈 문제다. 덴마크의 코펜하겐도 고민 끝에 홍보업체들을 입찰시켜 ‘오픈 코펜하겐’이란 브랜드를 채택했다. 코펜하겐(Copenhagen)의 2~5번째 알파벳인 ‘open’에 착안했다. 덴마크인들의 발인 자전거부터 시청 앞 잔디밭ㆍ지하철역ㆍ휴지통에 이 브랜드를 붙여 널리 알렸다.

또 ‘Open for shopping’이란 문구로 외국인 쇼핑을 유도했고 ‘Open for tolerance(관용)’에다 반(反) 동성애 혐오 운동의 상징인 무지개를 그려 넣었다. ‘Open for you’라는 문구로도 활용했다. 말 그대로 열려있는(open) 브랜드로 활용한 셈이다. 이 브랜드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23일 현재 전 세계에서 8만4342명이 ‘좋아요’를 클릭한 상태다.

일본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도 쓰이고 있는 ‘예스! 도쿄(Yes! Tokyo)’ 역시 매끄러운 표현은 아니란 게 중론이다. 『한국 영어를 고발한다』의 저자 최용식씨는 “저팽글리시(일본식 영어)의 전형”이라며 “Yes to Japan”이라고 써야 옳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 관광청이 채택한 ‘Endless Discovery(끝없는 발견)’는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글로벌 홍보컨설팅사인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스의 마이클 브린은 “일단 말이 되고, 빨간색을 활용해 일본 고유의 정체성을 살렸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Malaysia, Truly Asia(말레이시아, 진정한 아시아)’도 성공 사례다. 1999년까지 이렇다 할 슬로건이 없었던 말레이시아는 이 슬로건을 채택한 뒤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790만 명(1999년)에서 1500만 명(2004년)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관광 수입도 32억4000만 달러(약 3조4376억, 1999년)에서 82억 달러(2004년)로 급증했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서울사무소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의 매력 가운데 해외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게 뭔지 장기간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섞인 나라란 전제하에 ▶슬로건의 톤과 발음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매력이 느껴져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고 전 세계 신문·방송에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 전문가들이 우리 브랜드를 얘기하도록 유도한 게 성공 비결”이라 풀이했다. 말레이시아는 이 슬로건으로 일종의 ‘진화(evolution)’를 이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브린은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Korea, Be Inspired’라는 슬로건과 함께 ‘Be one with the Earth and the sky(땅과 하늘과 하나가 되라)’라는 말이 뜬다”며 “삐딱한 눈으로 보면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된다’는 ‘마리화나(마약)를 피우러 한국에 오라’는 말로 느껴질 수 있다. 한국의 특색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말레이시아 슬로건은 ▶운율을 활용해 매끄러운 영어가 됐고 ▶아시아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자신감이 묻어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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