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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추월 중 … 한·미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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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한반도는 예민하다. 지정학의 속성이다. 동북아 역학구도는 복잡 미묘하다. 그 유별남은 한국 외교에 통찰을 요구한다. 역사 속에 해법이 있다. 역사는 외교적 직관과 감수성을 제공한다.

 카이로(이집트) 회담 70주년이다. 1943년 11월 22일 회담은 시작됐다. 미국(루스벨트), 영국(처칠), 중국(장제스·蔣介石) 정상은 결의했다. 종전 후 식민지 한국의 독립 보장이다. 이런 역사 상식도 있다. “선언문에 한국 독립 조항을 넣은 것은 장제스 공로다”-. 그것은 심한 과장이다. 장제스는 조연에 그쳤다. 그 조항의 주도자는 루스벨트였다.

 나는 카이로 회담 현장을 찾았다(본지 11월 16일자 14, 15면). 기록·연구서의 진실을 추적했다. 그 속에 중국의 한반도 본능이 드러난다. 회담 초점은 중국의 영토 회복 문제였다. 루스벨트의 장제스 분석은 이랬다. “중국이 한국 재점령 등 광범위한 야심을 갖고 있다.”(미국무부 외교문서 FRUS)-.

 그 시절 충칭의 임시정부는 장제스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그 도움은 우리 역사에서 고마운 부분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안에선 미온적이었다. 주석 김구의 염원은 임시정부 승인 문제였다. 장제스는 그 요청을 외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임정 외교부장 조소앙의 설명은 명쾌하다. 그는 “일본 패망 뒤 한국을 자기 종주권 아래 두려는 중국의 욕망 때문일 것”(FRUS)이라고 했다. 한반도에 대한 욕망-. 그것은 청일전쟁(1894~95년) 이전으로 복귀다. 중국의 보편적인 정서다. 임정에겐 위선과 이중성으로 다가간다.

 청일전쟁 패배는 중국인에게 탄식과 굴욕이었다. 한반도에서 중국 영향력의 퇴출은 처음이었다. 에드가 스노우의 책 (『중국의 붉은 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10대 시절 독서 기억이다.

 “나(마오쩌둥)는 첫 문장이 ‘슬프도다. 중국은 장차 망하고 말 것인가’로 시작하는 책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내용은 조선과 대만에 대한 일본의 정복(청일전쟁), 인도지나 등에서 중국의 종주권이 상실된 것을 얘기한다. 나는 조국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고…”

 장제스는 국공(國共)내전에서 마오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한반도 인식과 열망은 비슷하다. 지금 중화의 후손들은 그 숙원을 실천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 예속 상태다. 중국 지원이 없으면 북한 경제는 무너진다. 김정은 체제의 핵 무장 야욕은 거칠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핵 야욕의 통제를 약속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북한관계의 변화를 시사했다. 그 후 북·중의 단합은 미묘해졌다.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언어와 표정은 달라졌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간직한다. 그 가치는 미·중 대치에서 완충 역할이다. 북·중 관계의 본질은 살아 있다.

 국제 거래에 공짜는 없다. 중국은 북한 핵 통제의 대가를 바란다. 그 속에서 한·미동맹의 이완을 노린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 편에서 떼어내려 한다. 한·미동맹은 중국의 동북아 열망을 차단한다. 한국 외교의 고심은 커진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늘려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단합은 뚜렷해진다. 미국의 핵심 전략은 중국 군사력 확장의 견제다. 미국은 일본 편에 선다.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추진을 뒷받침한다. 미·일동맹의 결속력은 한·미동맹을 추월하려 한다. 집단자위권은 군비증강이다. 우리의 경계 대상이다.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는 흔들리고 있다. 한국 외교는 선택해야 한다. 선택 시점을 놓치면 곤란해진다. 한국은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대안은 마땅치 않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론은 위험하다. 한국은 중진국이다. 강대국은 중진국의 그런 순진한 여유를 비웃는다.

 아베 정권은 계속 불쾌하다. 스가 관방장관은 안중근 의사를 모욕했다. 한국 외교부는 반박, 성토했다. 중국 정부도 우리를 거들었다. 하지만 역사 문제는 독자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한국에겐 중국과도 역사 갈등(동북공정)이 있어서다. ‘아시아 패러독스’는 복선이고 다층이다.

 중·일의 영토 분쟁은 험악하다. 하지만 중국의 자세는 실용적으로 바뀌고 있다. 시진핑 외교의 정냉경열(政冷經熱)이다. 정치와 경제를 나누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중 공동 압박은 한계가 있다.

 동북아 안보환경은 거대한 전환기다. 박근혜 외교는 고난도 게임에 익숙해야 한다. 우리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북한 핵 문제다. 그 바탕에서 완급과 경중을 재점검해야 한다. 정치·군사·경제 쟁점의 조합은 유연해야 한다. 동북아는 강대국 국익의 경연 무대다. 카이로 선언은 교훈과 지혜를 준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