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역사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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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충돌/이종욱 지음, 김영사, 1만2천9백원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가 펴낸 도발적 제목의 신간은 학계의 통설, 그리고 통설을 바탕으로 저술된 중.고교 국정교과서에 대한 문제 제기로 가득하다.

주류 사학계의 통설과는 병립할 수 없는 주장들을 이교수가 단기필마로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완벽한 역사 읽기'는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모든 역사서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비판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교수는 통설을 폐기 처분할 자신의 '새로운 역사'도 수많은 역사들 중 하나일 뿐이며 소임을 다한 후 또다른 역사에 자리를 양보할 것이라고 선선히 인정한다.

그리고 나서 주류 사학계의 통설을 전투적으로 공격한다. 마음이 앞선 근대적 민족주의 때문에 한국사가 근거없이 부풀려진 측면도 공격 대상이다.

이교수는 한국의 주류사학계는 역사 연구에서 가장 일차적인 사료읽기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독(誤讀)' 정도의 오류를 넘어서 멀쩡한 사서조차 읽기를 거부해 왔다는 것이다.

실례로 중국 진(晋)나라의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와 김부식이 펴낸 '삼국사기'의 기록이 시간적으로 겹치는 대목에서 한국의 주류사학계는 오히려 중국 사서인 '삼국지'를 따랐다.

그 결과 한국 고대사에서 백제의 경우 3세기 중엽 고이왕, 신라의 경우 4세기 중반 내물왕 이전의 역사는 공백상태로 남았다.

바로 그 역사적 진공은 4세기 왜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를 압박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소위 '임나일본부설'이 끼어들 틈으로 기능했다.

이병도.손진태.변태섭.이기백 등 사학계의 선학들은 어째서 '임나일본부설'에 빌미를 제공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받아들이게 됐을까.

그것은 연구 관행에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식민시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이병도와 손진태는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의 제자였다.

쓰다는 1919년 신라본기, 21년 백제본기, 22년 고구려 본기를 차례로 사료비판,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허구라는 주장을 펴 제국주의 일본의 역사학을 체계화한 장본인이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인정, 주류사학계 뿌리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지적 등을 동력으로 삼아 펼치는 이교수의 '새로운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학교 교실에서 배워 알고 있는 역사적 통념이 흔들린다.

이교수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고구려가 통일한 것만 못한 역사적 후퇴라는 통설에 반대하고, 고조선을 접수한 위만은 중국 연(燕)나라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이교수의 주장은, 주류의 주장에 물든 기자의 시각 탓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 위태로워 보인다. 가령 신라의 화백제도를 비판하는 근거로 든 '화랑세기'는 위작 논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이교수는 "독서 대중이 학교 국사와 통설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이교수 주장의 장차 수용 가능성,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고교 국사, 통설을 그 안에서 벗어나 덩어리째 내려다 보게 한 점에서 신간은 매력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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