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교수의 「교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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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전 모 대학에 있는 P교수의 교수론을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제나 현실에 대하여 반항적인 비판을 가하는 그의 말이었으나, 이 때의 대학교수에 관한 예리한 관점은 어딘가 나에게도 동감이 가는데 가 있었다.
P 교수는 한마디로 지금의 우리 나라 대학과 교수는 모두 글러 먹었다고 비난하였다. 아마 그날 따라 P 교수는 대학에서 무슨 못마땅한 일을 당한 모양이다.
P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한국의 교수는 그들의 생태에 따라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다. 그는 이를 학문 교수·감투 교수·매명 교수·무위 교수 라 명명하였다.
첫째의 학문 교수는 연구실에서 학문 연구만을 일삼는 교수들이다. 이들은 대학 안의 행사나 바깥 사회의 명사 같은 것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부류이다.
현실적으로 아무 지위와 권력은 없지만 그 대신 자기 학문에 대한 자신으로 유유자적하고 다른 교수를 속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감투 교수란 대학 안의 중요한 보직을 갖고 소위 당국자가 된 교수들이다. 처음 감투를 쓸 때는 퍽이나 겸연쩍어 하던 그들도 얼마 동안 관용차의 맛을 보고 결재 서류에 「사인」하는 멋을 알게 되면 아예 전문화되어 다음 보직을 위한 운동까지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본시 학문에 뜻이 있었던 교수도 급기야는 감투의 마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문 읽는 것이 독서의 전부가 되는 아까운 사람으로 화한다.
셋째의 매명 교수는 자기 학문에 대한 깊은 연구보다도 그들이 타고난 비상한 재간과 정치적 수완으로 「매스컴」의 저명인사로 등록된 교수들이다. 이들은 대학 안에서도 학생들에게 고답적인 인기전술을 쓰지만 주로 대학 밖의 세계를 활동 무대로 삼는다. 교수로서는 드문 자가용을 타고 「텔레비젼」의 좌담회에 나가 얄팍한 지식을 파는 것이 이들이다.
끝으로 무위 교수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교수를 말한다. 감투도 못쓰고 이름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 부류이다. 그 대신 이들은 대소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교수회에서 가장 많은 발언을 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하려는 족속들이다.
P 교수는 이러한 네 가지 형태에서 명실공히 교수라 할 수 있는 학문 교수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한탄하고, 특히 우리 나라 대학에서는 이들 학문 교수가 소외되는 것이 보통이니 어떻게 대학이 제대로 되어 나가겠는가 흥분하였다.
그러나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 P 교수 자신이나 이를 그럴싸하게 듣고 있는 나도 바로 그 무위 교수가 아닌가 생각하니 혼자 씁쓸한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P 교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극히 적은 수 이나마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학문 교수가 존재하는 한 대학의 보루는 지켜지지 않겠는가 생각되었다.
어떻게 보면 도리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보직 교수와 모든 교수를 대신하여 외부에서 일 해주는 매명 교수, 그리고 모든 학교일을 도맡는 무위 교수가 있음으로써 학문 교수는 그의 작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공헌은 크다고 하겠다.

<변태섭 서울대 사대 교수·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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