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두 번째 「이례」 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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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2일 소련은 최근 「제네바」 소재 국제적십자 위원회를 통해 현재 그들 손에 강제 억류 중인 우리 나라 원양 어선 동성 55호 선장 문종하씨에게 보내는 가족 친지들의 편지, 위문품 등을 접수·전달할 용의가 있다고 우리측에 전해 왔다고 한다.
71년5월30일 천도열도 근해에서 어로작업 중이던 우리 나라 원양 어업선인 전기 동성 55호가 돌연 소련 당국에 의해 나포된 사건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바 있거니와 소련당국자는 그로부터 약 40일 뒤인 작년 7월9일, 선장 문씨를 제외한 14명의 선원을 석방, 문씨만이 그 동안 소련 법정의 유죄 판결을 받아 복역 중에 있다.
그러므로 불법적으로 억류된 전기 동성호의 선체와 선장 문씨의 즉시 송환을 요구해 오던 우리로서는 소련 당국자의 이번 통보를 결코 만족스런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으나, 다만 인도적 견지에 입각해서 그 동안 중개 역할을 해왔던 대한적십자사 및 국제적십자위의 노력이 부분적으로 성공한데 대해 문씨 가족들과 더불어 기쁨을 표시하고 싶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련 당국이 베푼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이 같은 「인도적」 배려의 배후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라 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전세계적 규모의 「데탕트」 기운과도 관련, 소련이 특히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서 펴고 있는 전반적 미소 공세와 어떤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물론, 소련의 이 같은 미소 공세의 진의에 대해서 각별한 경계가 없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우리의 당면한 외교적 과제가 격동하는 세계 정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국익 신장을 위해 비 적성 공산 국가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 적극적으로 접근,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려는데 있는 만큼 우리는 소련 당국의 이번 조치를 보다 전진적인 자세로 이용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기대도 없지 않다.
오늘날의 세계는 이제 국가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서서 현실적인 국가 이익의 추구를 위해서는 심지어 가상적 적대 관계 국가에까지도 대화의 길을 터놓는 유연성·적극성이 없이는 자칫 국제 사회에서 유리된 고아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에도 최근 인도아 대륙에까지 군사적 진출의 발판을 굳혀놓은 소련이 「닉슨」 중공 방문 후 특히 눈에 띄게 현저한 동남아 중공 주변 국가들의 동요를 교묘히 이용하려고 적극적인 촉수를 뻗치고 있음은 다 아는 바와 같다. 그들이 제창한 이른바 「아주 집단 안보 체제 안」의 구체화 기미는 물론, 심지어 자유중국에까지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는 모종의 관계 개선 동향 등이 곧 그 단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기한 바와 같이 소련 당국자가 작년 7월9일, 14명의 동성호 선원들을 억류 40일만에 「이례적으로」 석방하는 조치를 취한데 이어서 이번 또다시 두번째 이례조치로서 위문품의 전달을 승낙한 일은 단순한 인도적 측면에서만 취해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다. 같은 혐의로 억류된 외국 선원들이 대체로 2∼3년 안에 석방된 전례가 없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한 소련 당국자의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그것을 그저 「나이브」한 태도로 받아들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소련 당국자의 이 같은 일련의 조치가 비록 딴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그것을 우리의 국가 이익의 신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 거기서부터 우리의 좀 더 큰 외교적 진전을 위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봄직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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