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국민투표실시"선언의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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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확대EC(호주공동체)에 대한 찬·반을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퐁피두」프랑스 대통령의 발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프랑스」국내뿐 아니라 유럽 제국을 어리둥절케 했다. 서독과 함께 EC의 기둥으로 확대EC를 추진해온 프랑스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별 논쟁이나 반대가 없었으므로 이번 발표는 거의 폭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계기로「퐁피두」가 고 「드골」의『수제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쉽사리 추출할 수 있다.
고 「드골」대통령은58년 「알제리」독립문제와 62년 헌법개정문제 등 6차례에 걸쳐 자신의 신임과 관련, 국민투표에 붙여『위신』을 과시한바 있다.
「퐁피두」의 이번 국민투표실시계획도 이러한 「드골」의 자치수법을 계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의회에서 상·하원을 통틀어 「드골」파가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고있어 영국의 가입을 비롯한 EC확대 안은 「퐁피두」대통령의 정책추진에는 별 장애가 없는 형편이다.
이런 면을 감안해볼 때 「퐁피두」대통령의 이러한 발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의도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즉 하나는 국내적으로 자신의 신임을 과시하기 위한 『내수용』이며, 또 하나는 영국·서독을 비롯한 EC가입제국에 대해 확대EC에서의 프랑스의 중추적 역할을 재확인해 두자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 국내에서는 확대EC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을 비롯한 몇몇 극좌세력밖에 없다.
프랑스 의회(하원)의 임기는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아 내년에 총선을 치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공산당은 프랑스 최대의 야당으로 「퐁피두」집권 3년 동안의 경제정책부진을 선거의 쟁점으로 들고 나와 공격할 것은 불문가지. 최근의 신문경영난을 비롯, 「르노」자동차공장에서의 노동자파업, 「샤방-델미스」수상의 탈세사건 등 경제문제를 들어 「퐁피두」정권을 공격하고있다.
「퐁피두」대통령은 이러한 계제에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확실한 EC확대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임으로써 국민의 경제에 대한 관심을 방향전환시키는 한편 미리 내년선거의 발판을 다져둘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은 「퐁피두」의 「드골」파의 정책에 대해 많은 비판을 가해왔으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드골」시대부터 추진되어온 미국을 외면한 프랑스의 독자외교에 대해서만은 비판을 삼가왔었다. 또 프랑스의 좌파지지 유권자들도 이러한 외교정책에 동조, 좌익 표가 「드골」지지표로 흡수되어「드골」파 세력을 강화해 주었었다.
그러나 금년에 들어서면서 공산당은 「퐁피두」대통령이 지난해12윌「닉슨」미대통령과 회담한 뒤부터 친미경향으로 기울고 있다고 지적, 외교정책에 대해 공격을 개시해 왔다. 즉 미군의 해외주둔 감축에 따라 프랑스가 유럽에서 미군철수에 의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방예산을 증액하는 한편 「아조레즈」의 「닉슨」 「퐁피두」회담에서 밀약이 있었다고 공박하고 나섰다.
공산당의 이러한 공격의 저의중의 하나는「드골」파의 독일외교노선에 공명하여 전향한 좌익 표를 되찾기 위한 내년의 선거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퐁피두」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좌익세력도 여타정책에는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확대EC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번의 국민투표로 이들을 딜레머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정당에서는 「퐁피두」의 이러한 속셈을 두고『경제정책실패』에 의한 국민의 불만을 국민투표로 무마하려한다고 즉각 반격에 나서고있다. 의회의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퐁피두」가 국민투표에서의 압도적 지지를 예상, 여세를 몰아 의회를 해산하고 금년 중 전격적으로 총선을 실시할 속셈이 아니냐는 경계론도 대두하고 있다.
또 한가지 이유로서는 서독이 독-소·독-파 조약 비준을 싸고 의회에서「브란트」정권이 궁지에 몰려 있으며, 「히드」내각도 탄광노조의 파업에서 비롯됐던 경제위기, 북「아일랜드」분쟁, EC가입을 둘러싼 야당의 치열한 공세 등으로 각기 국내적으로 정치기반이 약화된 기회에 프랑스에서만의 정권의 안정을 과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외교적 효과를 들 수 있다.
이번 발표가 18,19일에 있을 런던에서의 「히드」-「퐁피두」양국수뇌회담을 불과 이틀 앞두고 있었다는 점은 퍽 시사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의 EC가입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라고 요구해 오던 반대파의 입장을 더욱 강화시켜 「히드」수상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또 국민투표를 「엘리자베드」여왕의 방문 직전인 4월말∼5월초에 실시하기로 한데도 무언가 「퐁피두」대통령의 노회한 「노림수」가 있는 듯 하다.
즉 EC에서의 농산물가격에 대한 영국·서독과의 대립,「마르크」화의 강세를 등에 업은 「유럽」통화정책에서의 서독의 고자세에 밀리고 있는 프랑스는 각기 양국정권의 취약점을 이용, 국민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유일한 지도자로서 「유럽」의 EC외교에서 고압적인 태도를 지녀 유리한 교섭을 벌일 발판을 마련하자는데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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