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나를 실망시킨 ‘셀카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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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호 30면

여자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미녀처럼 사자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쓰다듬었다가 비비 꼬았다가 풀었다가 양손을 머리카락 속으로 집어넣어 머리를 더 부풀게 했다. 가끔은 머리카락을 눈송이처럼 뭉쳐 내 쪽으로 던지듯 펼쳤다.

여자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오전이었다. 사진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인데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내게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사무실이 강남에 있지 않으냐고, 안 그래도 오늘 강남에 볼일이 있어 나가는데 오후에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만나주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여자는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나는 영혼은 목소리에 있다고 믿는 쪽이다. 분명 아름다운 여자일 것이다. 적어도 영혼만큼은. 물론 나는 괜찮다고, 오히려 감사한 것은 이쪽이라고 대답했다. 어떤 설렘과 두근거림과 흥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덤덤하게 말이다.

12층 상담실에서 만난 여자는 성형미인처럼 예뻤다. 인공적 아름다움. 여자는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웃을 때 드러난 치열이 고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자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세계와 자신이 추구하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 여자는 나를 노려보면서 상체를 숙였다. 그러자 여자의 냄새가 내 쪽으로 쏟아졌다. 샴푸와 화장품과 향수가 섞인 향긋하고 달콤하고 아득한 냄새가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아까부터 나는 여자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여자는 듀오 광고사진에 대한 평을 하기 시작했다. 구도가 평범하다, 색감이 단조롭다, 모델이 일반인 같다. 나는 시간을 확인한다. 벌써 30분이 지났다. 사진을 보여준다던 여자는 빈손이었다. 포트폴리오를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사진은? 하고 내가 묻자 여자는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낸다. 내 얼굴에 비친 실망을 읽었는지 여자는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혹시 카메라에 대한 편견이 있느냐고, 예술가에게 카메라는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며.

여자가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 사진들은 모두 자신의 얼굴을 찍은 ‘셀카’, 그러니까 ‘셀프 카메라’였다. 내 얼굴에 비친 실망을 읽었는지 여자는 셀프 카메라는 화가의 자화상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혹시 셀카에 대한 편견이 있느냐고, 셀카는 자기 내면에 대한 치열한 탐구라며. 그러나 나는 여자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얼짱 각도’로 찍혀진 사진들이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한다.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여자는 자기가 듀오 광고사진을 찍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광고사진은 너무 예술적이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여자는 자신이 듀오 모델을 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것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듀오 모델은 일반인 같은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쪽은 너무 예쁘지 않으냐고.

여자를 배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여자는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능숙하게 셀프 카메라를 연달아 찍었다. 얼짱 각도로 말이다. 혹시 셀프 카메라에 대한 편견이 있느냐고? 물론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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