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3년 만에 열리는 내란음모 사건 재판은 이석기 의원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손에 넘어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도 치열해졌다.
하지만 재판 초기 단계부터 국가정보원의 수사 과정에 이런저런 허점이 있었던 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2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일부 녹취 파일의 원본이 삭제됐다며 디지털 파일의 증거 능력을 좌우할 수 있는 해시값(hash value)의 신뢰성을 문제 삼았다. 원본 일부가 삭제됐다는 것만으로 다른 많은 증거가 덮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히 일부라도 증거로 채택되지 못할 경우, 국정원의 기세는 초반부터 약해질 수밖에 없다. 통진당 측 변호인단에는 과거 ‘왕재산 사건’ 등 여러 건의 공안사건 변호를 맡았던 이들이 포함돼 있다. 과거 재판에서도 이들은 디지털 증거 수집과정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곤 했다.
15일 3차 공판에선 내란음모 혐의의 핵심 증거 중 하나인 5월 10일 곤지암 모임, 5월 12일 합정동 모임의 녹취록에 오류가 있어 수정·보완했다고 국정원 측이 밝혔다. 녹취록 발언 중 ‘절두산 성지’를 ‘결전(決戰) 성지’로,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기록했다가 호전적인 단어를 바로잡았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 부분을 ‘국정원이 일부러 왜곡한 것 아니냐’며 따지고 나섰다. 게다가 이처럼 중요한 녹취록 작성을 경험이 많지 않은 직원에게 맡겼던 사실이 드러났다.
두 차례 공판을 지켜보며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국정원의 ‘능력’ 문제다. 디지털 증거는 속성상 변조·훼손의 가능성이 커서 확보·보관 과정에서 철저한 절차와 기술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디지털 증거를 함부로 복사하고 원본을 지운다거나, 핵심 증거가 될 녹취록 작성을 초짜 직원에게 맡겨 무수한 오류가 나왔다는 사실은 국외자 눈에도 어설퍼 보이는 초보적 실수다. 두 번째는 국정원이 무언가 ‘의도’를 갖고 수사를 서둘렀던 것 아니냐는 점이다. 실수와 허점이 많이 드러나다 보니 이런 걸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채 ‘내란음모’ 사건으로 돌입한 이유가 궁금해서다. 통진당을 비롯한 반정부 세력은 국정원이 대선개입 의혹 같은 다른 사건을 덮기 위해 이 사건을 터뜨렸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위기에 몰린 이들이 정치 공세에 나설 것은 일찌감치 예상된 일이었다. 반면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국가를 위태롭게 한 공안 사건’으로 규정한다. 국내 정치와도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재판은 국정원의 ‘능력과 의도’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두 측면을 철저하게 입증해 내야 당초 내세웠던 ‘주사파 세력’의 척결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