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천덕꾸러기' 국악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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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국악은 천덕꾸러기인가. 명창 박동진 옹이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할 때 다들 맞장구는 쳤지만 국악은 여전히 방송의 중심에서 비켜서 있다. 개편 때마다 '왜 국악 프로는 홀대하는가'하던 소리들도 이젠 뜸한 것 같다. 그들도 지친 것일까.

국악방송(서울.경기 FM 99.1MHz, 남원 FM 95.9MHz)이 지난 2일 개국 2주년을 맞아 특별대담을 가졌다.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국악방송이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국악방송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과 이웃한 국립국악원 안에 위치한 국악방송은 도심 속의 고궁 같은 느낌을 준다. 각종 국악기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박물관 같기도 하다.

국악을 잘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음악을 우리가 즐기고 그것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국악을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어릴 때 그것과 친해졌으면 참 좋았을 뻔했다.

국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특히 취학 전이나 초등학교 시절)이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모름지기 '즐거움의 창'은 열어야 할 시기가 있는 법이다. 어릴 때 판소리를 자주 접한 사람은 평생 그 소리를 안고 갈 수 있다. 영어듣기처럼 국악듣기 문제를 대입수능에 추가하면 금세 국악이 중흥할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을 나는 가끔 한다.

국악인의 이미지에 혹시라도 어떤 고정관념이 덧씌워져 있다면 그것도 바꾸어야 한다.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젊은 국악인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외모에서부터 깔끔한 신세대의 매력이 물씬했다.

저런 친구가 TV에 출연하면 국악계의 스타가 탄생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청춘시트콤에 나오는 대학생들의 전공으로 신방과나 체육학과도 좋지만 국악을 공부하는 주인공이 하나쯤 있으면 하는 상상도 해본다.

주객전도의 우려도 이해가 되지만 먼저 그 사람을 좋아하고 다음에 그 사람의 생산물이나 활동영역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남일을 좋아하다 보니 축구도 좋아하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서태지가 '하여가'에 태평소 가락을 넣으니까 비로소 태평소를 알게 된 청소년이 적지 않았다. 랩과 판소리가 결합된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노래도 좋은 실험이었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김치버거 나왔다고 김치의 수명이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날 함께 출연한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 원일 교수의 창작국악을 들으며 묘한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절대 늘어지지 않았고 결코 낡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선했다. 이렇게 좋은 건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MBC의 '샘이 깊은 물'이라는 국악프로도 '수요예술무대'처럼 오래갈 수 있었는데 왜 없앴는지 이해가 안 간다. 당시 방성근 PD는 탄원서까지 준비했었다.

국악전문 PD를 따로 선발하진 못하더라도 국악을 사랑하는 PD의 순정을 짓밟아서야 될 일인가. 지금 방송개혁을 외치는 자들은 국악의 르네상스도 함께 외쳐주기 바란다. 우리 음악의 세계는 넓고도 그윽하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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