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글로리어·스타이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반역한 여성들은 도회의 슬럼에서/교외의 게토에서/대기업의 타이프라이터 앞에서/차파키틱 호 변에서/그리고 바빌론과 같은 퇴폐의 베드 위에서 고통 당한다.』
이것은 미국의 전투적 여성해방운동 단체인 WITCH (마녀,『지옥에서 온 여성국제 테러리스트 음모 단』의 약자)의 단원이 내뱉은 시구다.
이 시의 끝 귀 절은 다시 『여성의 온갖 속박을 끊어버릴 것』을 다짐하면서 『여성을 억눌러 온 바빌론의 노예상태를 파괴할 것을』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새 문화가치 창조모색>
1920년, 70여 년에 걸친 고심 참담한 투쟁 끝에 아메리카의 여성들은 부인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 19세기적 페미니즘은 서서히 퇴조, 미국 여성운동의 지평에는 새로운 재생부인운동(Wo-men's Liberation Movement)이 대두했다.
『부인에게 참정권을!』요구하던 19세기의 페미니즘과는 달리 오늘의 여성해방운동은 단순한 남녀차별 대우의 철폐보다도, 남성본위·남성 중심의 기성문화와 가치를 여성자신의 손으로 창조해 보겠다는 일종의 문화혁명과 사회변혁, 인간개조와 의식혁명을 부르짖는다.
흑인·푸에르토리코인·시카노(멕시코인)나 마찬가지로 미국사회엔 여성이라는 또 하나의 억압된 계층이 있다는 것, 이들은『그의 차, 그의 여자, 그의 담배(His car,his girl,his cigarettes)남성 기호품으로 낙인찍히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성에 의한 억압관계가 근절되고 최후의 피억압자인 여성이 해방이 완성된다는 것을 70년대의 뉴·페미니스트들은 주장한다.

<미모에 정치 안목 높아>
이런 현상은 60년대 후반에 노도와 같이 분출했던 반전·흑인운동·학원투쟁·히피적 반 문명운동에 참가한 미국 여성활동가들의 주체적 반성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뉴·페미니스트 운동은 베티·프리던 케이트·밀레트 등 많은 기수들을 탄생시켰다.
그 가운데서도 71년의 여성운동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스타·플레이어가 바로 미모와 정치적 안목과 행동적 다이너미즘을 겸비한 글로리어·스타이님(35)이었던 것이다.
글로리어·스타이님은 미국여성운동의 기본방향을 단순한 사회운동의 수준에서 정치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여성운동을 정치적 현실 인식과 사회과학적인 인식 태도에서 바라본 것이다.
이것은 미국여성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을 기록한 것이다.
전환의 발단은 의외에도 체제에 대한 반발에서보다도 반체제운동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출발했다.
닉슨 대통령 취임식 반대 데모 때 리더인 델린저가 전쟁과 인종차별을 격렬한 어조로 비난하는 연설을 하자 엘런·윌리스란 여자가 『여성 차별은 어떻고?』하고 중간에 끼어 들었다. 그러자 등단한 슐라미스·파이어스톤이란 여자가 마이크를 잡아 남자들은 『저 여자를 끌어내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파이어스톤 등 일단의 여성 활동가들은 그로부터 일체의 남성일변도의 혁명운동과 절연하고 별도의 조직, 별도의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한때는 버니·걸 노릇도>
『소련을 보나 쿠바를 보나 사회주의 혁명도 남성 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했다. 여성은 성의 대상·번식 자·가정부·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해 있고 인간성을 부정당하고 있다』는 게 그녀들의 선언이었다.
뉴요크·래디컬·위민이니 레드·스타킹즈니 하는 급진파들이 속출한데 이어 마침내 세례 요한 격인 이론가이자 『여성의 신비』란 책의 저자인 베티·프리던이 나왔다.
『가정이라는 강제수용소에서 여성들은 남편이나 자녀 등 타인을 통해서만 삶을 영위하면서 인공위성이 날고 혁명이 일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정치적 동면을 강제 당하고 있다』고 전제한 그녀는 50년대 복고 무드가 퍼뜨린 『여성이여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한 구호의 기만성을 폭로했다.
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서서 여성해방운동은 한 걸음 더 전진(?)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여성의 단결은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는 철학을 내전 로빈·모건이 입장이다.
엘리트 여성과 부인노동자, 미녀와 추녀, 처녀와 기혼녀와 하이·미스 등 여성을 질투와 대립의 양대 진영으로 분열시켜온 남성세계의 음모(?)에 대항, 모든 여성들의 주체적인 단결을 회복하자는 이야기다.
결국 남녀 동일 임금·보육 소 확충 등 여성차별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 제도를 변혁하는 투쟁에 병행해서 여성을 멸시하는 의식구조와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변혁을 꾀하자는 것이 70년대 뉴·페미니스트 운동이 도달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휴·헤프너의 플레이보이·클럽에서 버니·걸 노릇을 했고 스미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고 인도를 다녀온 뒤 글로리어·스타이님도 정치적 각성에 도달했다.
『미국은 수백만 기아 군중 가운데 홀로 동결해 있는 컵·케이크와 같다』고한 그녀의 현실 인식은 다시 여성의 억압상태가 백인 남성이란 억압자에 의한 항구적인 통제와 착취제도의 소치라고 단정한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 여성들에게는 언제나 분노가 쌓여 있다. 플레이보이·클럽이나 저임금에 있어서나 『코피 한잔 가져 오라』는 소리를 들을 때 그러한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문제이며 흑인·인디언·이민노동자 등 모든 억압된 계층과의 정치적 동맹을 통해 싸워 나갈 문제라고.
이 운동의 수단으로 그녀는 TV에 나가 테이블·스피치를 하고 타임지에 평론을 쓰고 뉴요커 지에 고정 칼럼을 담당하기도 한다.
유진·매카디 조지·맥거번 찰즈·구델 존·린지 로버트·케네디 같은 정계의 자유주의자들은 누구나 그녀의 열띤 찬조활동을「불가결」의 것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혼, 여생을 반 인간화>
어떤 때는 데모대의 선봉에 서서 정치연설을 하는가 하면 바이킹 출판사장 톰·긴즈버그, 테너·색서폰 연주자 폴·데스먼드, 영화감독 마이크·니클즈 등 여러 남자들과 잠깐씩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결혼? 자녀? 그녀는 절대로 재래식 결혼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결혼은 여자를 반 인간화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더구나 영원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녀는 확실히 여성해방운동엔 지각생이다. 그러나 그 매력적인 지각생은 섹시하면서도 반 섹슈얼리즘의 깃발을 휘날리며 수천 년 내의 남성제국의 문명에 맹렬히 도전하는 표범으로 발벗었다. 이 분노한 표범의 발톱이 오만한 남성의 철면피를 얼마나 할퀼는지는 72년에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끝><유근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