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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18) 대지-3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박신영 역사에세이 작가

그러는 사이에 하늘은 캄캄해지고 공기는 황벌레의 나래 치는 소리로 웅웅 울렸다. 그리고 땅에도 수없이 떨어졌다. 황벌레가 그냥 지나간 곳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내린 곳은 삽시에 황무지와 같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천명이라고 한숨지었으나 왕룽은 성을 내며 황벌레를 후려갈겨서 떨어지는 것을 발로 문질러 죽였다. 일꾼들도 도리깨를 휘둘러서 황벌레를 떨어뜨려서는 불에 타 죽게 하고 물에 빠져 죽게 하였다. 그들은 몇 백만 마리를 죽였지만 수없이 많은 황벌레 떼를 막아낼 길이 없었다.

펄 벅의 소설 『대지』에는 자연재해와 싸우는 중국 농민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번역자에 따라 황충(蝗蟲), 황벌레, 메뚜기라고도 하는 이 곤충은 일반적으로 메뚜기를 말한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메뚜기는 ‘누리’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황충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물론 해충을 다 황충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어, 당시 우리나라가 『대지』와 똑같은 메뚜기의 습격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황충의 습격은 소설이나 역사책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 3월 아프리카 남부의 마다가스카르 섬은 전국 경작지의 60%가 황폐화되었다. 메뚜기 떼가 습격해 하루에 곡식 1만t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같은 해 5월에는 이스라엘이 98년 만의 최악이라 평해지는 메뚜기 떼의 습격을 당했다. 이 메뚜기들은 이웃 나라의 건조 지역에서 날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서남아시아나 북부아프리카 사막 등 건조 지역의 메뚜기는 농업에 큰 피해를 끼치는 해충이다. 구약성서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그 피해의 역사는 길다. 이런 메뚜기 떼의 습격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일러스트=홍주연

주의 깊게 볼 만한 최근의 피해 사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이다. 2011년 2월, 오스트레일리아는 120년 만의 최악이라는 홍수를 겪었다. 이어서 크기가 평균 8㎝나 되는 메뚜기 떼의 습격을 당해 국토의 절반가량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대지』에서도 홍수 이후에 메뚜기 떼의 습격이 이어진다. 홍수와 메뚜기 떼 습격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홍수가 난 후, 습도가 높아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메뚜기 번식에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다. 그동안 땅속에 수면 상태로 있던 메뚜기 알이 한꺼번에 부화하기 시작한다. 부화한 메뚜기들은 순식간에 성충으로 자라난다. 주위에 먹을 것이 없어지면 수가 늘어난 메뚜기 떼는 먹이를 찾아 대규모로 이동한다. 한 무리가 1000억 마리까지도 된다. 1t의 메뚜기 떼는 사람 2500명이 먹을 식량을 단 하루에 먹어 치우기 때문에, 이 메뚜기 떼가 날아 이동하다가 내려앉은 농경지는 곧 황폐화된다고 한다.

『대지』에서, 황벌레의 습격과 관련해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오란이 황벌레를 볶아 일꾼들과 아이들을 먹이는 장면이다. 어릴 적에는 징그러웠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조금도 역겹거나 이상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도 농약 사용으로 벼메뚜기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메뚜기를 흔히 볶아 먹곤 했으니까. 머리와 다리를 뗀 메뚜기 요리는 보기에 새우와 비슷해 보인다. 귀뚜라미를 먹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새우를 처음 보고 ‘바다의 귀뚜라미’라고 불렀다고 하니, 곤충이나 새우나 뭐 거기서 거기다. 괜히 편견을 갖고 볼 필요는 없다. 아니, 어쩌면 빨리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 우리도 곧 곤충을 일상적인 식량으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량 부족, 지구 온난화에 대비하여 다른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을 찾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13년, 곤충을 식량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으니까. 영화 ‘설국 열차’에는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바도 나오지 않았는가. 뭐 메뚜기 정도야.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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