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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시대의 초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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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09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12월 3일부터 볼 수 있는 미국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의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1959). USA. New York City. © Philippe Halsman/Magnum Photos

조선시대 궁중 화원(畵員)이었던 김용원이 신사유람단에 끼어 일본을 둘러본 뒤 일본인 사진기술자를 초빙해 1883년 서울 중구 저동에 처음 사진관을 개설한 지 올해로 130년. 특정 계급의 소유물이었던 초상화와 달리 초상 사진은 자신의 이미지를 남기려는 보다 많은 사람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로 각광받았다. 예술가들은 여기에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해석했다. 초상 사진에는 그렇게 찰나적 순간의 섬광이 혹은 평생토록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이 새록새록 담겨 있다.

초상 사진을 보는 몇 가지 시선

2013년 서울의 가을은 그런 사진들의 축제다. 주제를 아예 ‘시대의 초상, 초상의 시대’로 잡은 ‘2013 서울사진축제’를 비롯해 20세기 현대사진사의 거장 로버트 프랭크, 라이프 잡지 표지사진을 가장 많이 만든 필립 할스만, 10대의 불안과 희망을 담아내기로 유명한 라이언 맥긴리 등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가을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다. 사진심리학자 신수진에게 초상 사진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이드를 부탁했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의 ‘Trolley’(1956), New Orleans, Gelatin silver print, 30.6ⅹ48.5cm, ⓒRobert Frank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13 서울사진축제’에서 볼 수 있는 토리이 류조의 ‘거제도 남자 12명의 신체측정사진’(19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가장 중요한 정보는 얼굴에서 나온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에서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고, 이런 능력에 있어서 모두가 나름의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들이다. 얼굴에서 정보를 얻는 능력은 타고나기보다는 생존과 관련된 적응적 체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갓 태어난 아이는 매우 제한된 시각 경험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고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고 엄마의 표정을 따라 미소 짓는 법을 습득하면서 살아남는다.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이 생명체인지 아닌지, 인간인지 아닌지, 그리고 내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시각 활동의 근간이 되는 목표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언제나 얼굴에서 나온다. 이것이 우리가 ‘초상(肖像)’에 매료되는 본능적인 까닭이다.

얼굴에서 수집되는 정보는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생활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격이나 정서 상태를 파악할 수도 있다. 표정은 태도나 감정 상태를 반영하므로 함께 있는 사람들끼리의 교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웃고 울게 되는 경험은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비언어적 소통으로서의 표정은 매우 즉각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면 나의 표정도 자연스럽게 일그러지면서 기분이 나빠진다. 이러한 감정의 동조현상은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며 생활한 가족이나 오랜 친구들은 눈과 입, 이마와 코 등을 둘러싼 근육의 움직임이 유사한 패턴을 지니게 되어 서로 닮아가기도 한다.

따라서 생생한 인물의 초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풍부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만든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거나 위인의 초상을 벽에 걸어두는 이유도 얼굴이 소통의 최전선을 만들기 때문이다.

흔히 ‘눈으로 말한다’는 표현을 하는데, 화가나 사진가들이 만든 초상에서도 눈의 위치와 시선의 방향은 중요하다. 전통적인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그릴 때 눈을 화면의 좌우 중앙에 배치하고 정면을 응시하게 함으로써 시선에 권위를 담고자 했다. 인간의 눈동자는 흰자위가 넓어 시선의 방향이나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기 쉬워 눈을 맞추거나 피하는 것만으로도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이 단 1도만 움직여도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쓰는 경우도 내 눈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상대방이 나를 주목하지 않게 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 초상 사진으로 미국의 분열 표현
사진 속에 등장하는 초상은 가장 흥미로운 관찰 대상인 인간의 얼굴을 경계심 없이 무한 탐색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작가가 얼굴을 보여주는 방법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은 초상 사진이 주는 신선한 체험이다. 사진가들의 시선은 눈앞에 실재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경험할 수 없는 관점의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사진 속 인물을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현대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89)는 1950년대에 미국 전역을 돌며 촬영한 ‘미국인들(The Americans)’에서 매우 인상적인 초상들을 보여준 바 있다. 그는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주변인들의 관계를 통해 미국 사회가 지닌 분열성이 드러나는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의 미국은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성장에 힘입어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자부심과 패기에 찬 사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이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인종 다국적의 뿌리를 드러내며 기묘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작품이 완성되었을 당시에 미국에서 이 사진을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출판사들은 작품집의 출판을 꺼렸고 당연히 컬렉터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이 지니는 역사적 위상은 전설에 가까워졌다. 누구도 보려 하지 않았고 주목하지 못했던 미국인의 초상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선구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시사회에 몰려든 인파를 찍은 사진(표지)을 보자. 지금도 영화 배우가 등장하는 레드카펫 행사에선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주연배우이고, 수많은 팬들은 한 명의 주인공만을 바라본다. 그런데 로버트 프랭크가 시사회가 열리는 할리우드의 극장 앞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앞에선 사람들의 교차된 시선이다. 화면의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배우의 얼굴은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해졌고 눈동자도 보이질 않는다. 그 대신 그녀를 보러 온 인파 속 여인들의 얼굴과 눈동자는 작지만 선명하다. 그들의 시선이 부러움으로 빛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여러 방향으로 엇갈려버린 시선은 대중의 환호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대림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라이언 맥긴리의 ‘Laura(thunderstorm)’(2007), C-print, 61 x 41 cm
라이언 맥긴리의 ‘Jonas_Barn_Snow_Disco’(2009), C-print, 183 x122 cm

젊음의 순수ㆍ일탈 담은 라이언 맥긴리
대중 매체 시대를 맞이하여 초상은 ‘유명함’을 형성하는 기준이 되었다. 카메라 앞에 선 인물들을 세련되고 멋있게 꾸미는 온갖 방법들이 동원되면서 대중 매체에 얼굴이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얼굴은 아름다움과 우월함의 표준이 되었다. 유명한 사람이 매체에 등장한다기보다는 매체에 등장하는 얼굴이 유명해지는 것이다. 특히 광고나 화보에 등장하는 인물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면서 그들의 얼굴을 주로 찍는 사진가의 역할도 함께 커졌다. 라이프(LIFE)지의 표지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다는 필립 할스만(Philippe Halsman·1906~79)도 그러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인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포착해 친근감을 주는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수많은 정치인과 연예인·예술가 등 유명인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가식 없는 표정을 드러냈다.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틀에 박힌 미소를 짓는 얼굴은 그의 사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묻어나는 꾸밈없는 미소가 보는 사람도 덩달아 상쾌한 기분이 들도록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사진이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매체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누구나 초상 사진을 남긴다. 너무나 평범해져 버린 사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37)의 사진은 그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해법을 제시한다. 사진 속 인물들은 자유와 해방, 열정과 순수, 일탈과 방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젊은이들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무엇이든 가지게 될 수도 있는 그들의 얼굴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거침없는 행동과 카메라를 비껴나간 시선으로 그들은 세상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분방한 시선은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 심지어는 감상자와의 구분도 없애버려 그들을 따라 무작정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강렬한 예술적 체험 주는 초상 사진들
결국 초상은 시대에 대한 기록이며 기억으로 남는다. 오래전 사진관에서 찍힌 누군가의 기념사진은 최초에는 당사자에게만 의미 있는 물건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열망이 담긴 삶의 비망록이 될 수 있다. 초상은 사진의 역사가 시작된 19세기 중반부터 가장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사진의 장르이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그것은 얼굴이 담긴 사진에 대한 선호가 두 갈래로 갈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정보를 얻는 일에는 전문가 수준의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일엔 인색한 것 같다. 특히 한국의 애호가들은 타인의 초상을 작품으로 인정하고 소장하는 것에 대해 다분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전시장에 걸린 인물 사진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감상평을 쏟아 내거나 유명인의 초상이 포함된 전시가 흥행 몰이를 하는 것과는 상반된 현상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나와 타인에 대한 선 긋기를 일삼는 배타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초상이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초상만큼 강렬한 예술적 체험을 줄 수 있는 사진도 많지 않다. 예술적 체험이란 결국 작품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공감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타인의 초상을 통해 공감과 소통, 체험을 쌓아가다 보면 내 삶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완성되어 갈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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