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찰기 파문 확산] 美, 한편에선 對北강경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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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국 정찰기 위협사건이 미국 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북핵 대응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북핵문제와 관련, 금기시됐던 '군사적 해결론'이 지난 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처음 언급됐고, 국방부는 4일 본토에 있던 B-1.B-52 폭격기 24대를 괌에 증강 배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이라크전에 따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오래 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라며 정찰기 위협사건과의 직접적 연결을 피했지만 발표 시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 언론의 반응도 이례적이다. 이라크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CNN.ABC.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4일 일제히 정찰기 위협사건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이들은 1969년 미 공군의 고공 첩보 정찰기(EC-121) 격추사건, 2001년 중국 하이난섬 인근에서 발생한 미 해군 정찰기(EP-3)강제 착륙사건과 비교해가며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정찰기를 북한의 미그기가 레이더로 정조준한 상태에서 조종사가 버튼만 눌렀으면 바로 추락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초점이 모아졌다.

미 의회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이번 도발행위로 대북 정책의 축이 국무부에서 국방부로 옮겨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 정부와 미 의회 일부를 중심으로 제기돼온 북.미 간 직접 협상론이 주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한에 대한 '금지선 정책'(Red-line Policy), 즉 부시 대통령이 직접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처럼 '북한이 더이상 넘어서는 안될 선'을 공식적으로 경고하라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상태라는 관측도 있다.

북핵 사태로 화전의 기로에 선 부시 행정부에 정찰기 사건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먼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찰기 위협사건 직후 백악관의 동아시아 안보관계자와 접촉한 한 외교소식통은 "그들은 이번 사건을 예견된 행위로 받아들였다"면서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더욱 강화시켜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사진 설명 전문>
미국이 4일 북한을 겨냥한 서태평양지역 병력 증파의 일환으로 괌에 파견을 명령한 B-52폭격기(左)와 B-1 폭격기. 미국의 이번 조치는 지난 2일 미 정찰기 RC-135에 대한 북한 전투기의 위협 비행 등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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