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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탈퇴하면 손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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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이 말이 옳은지, 저 말이 옳은지 헷갈릴 때 사람들은 부정적인 견해에 귀가 더 솔깃해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에는 멀리 길게 바라보는 게 성급한 오판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국민연금의 운명이 이토록 험난할지 누가 알았으랴. 아이의 운명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 비만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해 격하게 다이어트를 시켰다. 국민연금이 스무 살이 되던 해인 2007년의 일이다. 연금 수준을 60%에서 40%로 깎았다. 살아 있는 세대의 위태로운 노후보다는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더 걱정했다. 부모는 늘 희생해야 하는가. 국민연금은 극심한 다이어트의 대가로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사탕을 받았다. 국민연금에 가입할 기회가 없었던 노인 70%에게 월 10만원의 연금을 지급했다.

 월 10만원이 적다고 생각되었는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의 이름을 ‘기초연금’으로 바꾸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애초 기초연금은 국민 누구나 노후에 ‘1인 1연금’을 받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연금 가입 기회가 없었던 노인이나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었던 전업주부에게도 기초연금을 지급해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둘로 나누어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운영하자는 것이 골자다. 보수와 진보 모두가 기초연금에 대해 강렬한 마력과 향수를 느꼈다. 그러나 당장 거둬들여야 할 재원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기초연금은 지난 대선에서 부활했지만 대선 후 현실의 벽에 다시 부닥쳤다. 재원의 조달과 미래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상위 30% 노인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하위 70% 노인에 대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차등 지급하는 방식을 놓고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형평의 문제에서 발목이 걸린 것이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기초연금안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돼 있다. 성실한 가입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를 꼼꼼히 따지는 형평의 수렁에 빠졌다. 국민 정서는 배고픔보다는 배아픔에 더욱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에서 탈퇴하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점은 애써 간과되고 있다.

 이러한 기초연금 논란 때문에 국민연금을 탈퇴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평균 소득자(월 200만원)가 20년을 가입하면 57만원의 국민연금을 받는다. 그런데 연금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월 100만원 소득자가 20년 가입하면 47만원의 연금을 받는데 가입하지 않으면 20만원을 받는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연금은 은퇴 후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다. 100세 시대를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가입해야 마땅하다. 이처럼 황금알을 꼬박꼬박 낳아주는 거위를 버려서야 되겠는가. 기초연금 논쟁이 자칫 노후에 착실히 대비하려는 국민을 호도하고 가입을 탈퇴시켜서는 안 된다.

 올해 내내 기초연금안이 나올 때마다 돌팔매를 맞았고 국민적 갈등은 극심했다.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기초연금 때문에 국민연금을 탈퇴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국민연금을 지켜야 할 때다. 여야 정치인과 정부를 한번 믿어보자. 당신의 연금이 절대 손해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세심하게 계산하고 있지 않은가. 긴 안목으로 인내를 갖고 국민연금과 맺은 인연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끈을 놓는 순간 미래는 없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