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관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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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해는 배추·무우가 예년에 없던 풍작이라 한다. 다른 해에는 배추 값이 싸지면 양념 값이 뛰고 양념 값이 싸지면 배추 값이 뛰어 주부들을 울리곤 했는데 올해는 배추값도 싸고 양념값도 싸다고 한다. 어느덧 하늘이 이 땅 주부들의 가엾은 사정을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어진 모양이다.
「다락같은 물가고」란 말이 있은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말도 요즈음은 우리의 생활 양상이 달라짐에 따라 그리 실감나는 「쇼크」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하늘 모르게 치솟는 고층 「빌딩」에 기대어 분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높고 또 많은 일들을 겪는 일이 당연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도를 지나고 고층「빌딩」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당할 때는 말썽이 따르게 마련이다.
비록 이런 모든 것의 높은 현상이 금년에 와서야 갑작스레 생긴 일은 아니지만 아뭏든 금년에 들어와 우리를 무척 걱정스럽게 하고 조바심 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간단한 예로 대량 살인을 저지르는 교통 사고의 연발,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감원 선풍, 환율의 변동과 불경기의 가속, 극심한 공해의 증가와 불량 식품의 난무, 거기에다 잇따르는 학생 「데모」와 다수의 처벌, 일일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겠다.
이런 바람을 모두 안고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일반 서민의 걱정거리에 들기엔 아직도 어려운 일인 것같이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네 살림이란 아직도 그것을 걱정하기엔 너무 쫓기고 그리고 지쳐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보다 더 서글픈 것은 먹이를 찾아 나서야할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누구나 다 겪은 일이지만, 가게마다 쌀이 동이 나서 아우성 치는 모습을 보았다.
햅쌀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형편들이고, 정부미란 어디로 다 꼬리를 감추었는지 싸전은 텅텅 비어 있어서 야단들이었다. 역사이래 나라는 농업국이요, 역대 정책의 담당자는 농촌 개발을 외쳐왔고 한결같이 「문제없다」는 소리만 거푸해 왔다.
더욱 아리송한 일은 도입 양곡은 해마다 늘고 분식은 장려되는데, 싸전엔 한끼의 쌀알도 없다니 정말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이다.
사람이 밥알을 찾아 헤매 다닌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린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온 것이 잘못인가.
그래서 누구의 얘기든가. 남의 긴 머리칼을 자르러 다니는 행정력이 있다면, 그 남는 여력으로 이런 일들이나 단속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더 실감 있는 소리로 돌려왔다.
그 중에서도 단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겨우살이를 앞둔 김장의 풍년이라 하겠다. 거기다 양념 값도 뛰지 않고 또 고맙게도 올 겨울은 추위도 짧다고 한다.
서민의 숨쉴 구멍도 좀 있어야겠다. 어떻게든 이 선량한 백성을 자연만이라도 돌보심이 있을진저!
성춘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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