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치 못한 인신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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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대법원의 집계에 의하면 금년 들어 지난 8월말까지 전국 법원이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범죄 수사가 성립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내린 건수는 4백87건이나 되며, 그밖에도 구속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수사한 피의자 중에서도 1만9천여명을 불기소 처분했음이 밝혀졌다.
한편 검찰은 지난 8월말까지 7만1천2백31명의 영장을 신청하여 6만5천7백69명이나 구속하였는데 이중 기소한 것은 영장 발부 전체 인원의 70·9%인 4만6천6백38명에 불과하여 영장신청 건수의 9%정도만 기소하고 있는 실정임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이처럼 많은 인원을 구속하고서도 그중 29·1%는 기소도 하지 않고 있으며, 또 기소한자 중에서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 97건, 증거가 없어 무죄 판결된 것이 1백98건, 증거 불충분으로 인하여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1백85건이나 되어 검찰조차 그들의 인권 감각이 얼마나 무딘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 이렇게 많은 무죄가 생기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검찰의 수사 「미스」나 공소 유지 노력이 불충분한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실정하 검찰 측으로서는 혹은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 형사 보상을 청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안이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죄 없이 무고하게 구속되었던 사람의 피해는 얼마간의 금전 따위로는 결코 보상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인신 구속에는 누구보다도 검찰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검찰이 구속 영장을 신청한 사람의 60%정도만을 기소하고 40%정도는 방면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검찰의 구속이 신중성을 결하고 있음은 명백한 것이다.
증거 불충분이나 증거가 없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그 대부분은 강제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거나, 자백을 유일한 증거로 하여 기소했기 때문에 법원이 그 증거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당국이 헌법의 원리인 자구의 증거 능력 제한에 관한 규정을 모를리 없을진대 이를 실천하는 보다 신중한 인신 구속과 기소 정책이 아쉽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권 수호에 있어 법원까지도 신중을 결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들이 구속영장을 지나치게 쉽게 발부하고 있다는 사실로써도 증명된다. 영장이 발부된 사람 가운데 그 29%가 무혐의로 불기소되고 있다는 사실과 또 구속 적부 신청자의 43·8%가 석방되고 있는 사실, 이 두 가지만을 보더라도 영장 담당 법관은 영장 발부 때 되도록 이면 증거 보강을 자주 요구하고, 영장 기각에 과감하여야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법원이 판결문의 송달을 빨리 하지 않아 형사 피고인의 인신 구속이 부당하게 연장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법원은 판결문의 송달을 규칙대로 신속히 하여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검찰이나 법원이 일부러 인신 구속을 자행하거나 피고인의 구간을 연장하는 것이 아닐 경우에도 사무의 폭주와 인원 부족 때문에 부득이 이러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는 현상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검찰의 인원을 늘려 검사가 수사 지휘와 공소 유지에 성심 성의를 다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요, 법원도 빨리 판사 수와 정무 직원을 늘려 공정하고도 신속한 재판을 하여 인권 보호에 만전을 기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로서 검찰과 법원에 거듭 요망하고 싶은 것은 헌법의 요청인 불구속 기소 원칙의 준수와 직권 보석 제도의 선용이다. 외국, 특히 우리 형소법의 모국인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정한 보석금만 내면 보석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보석이 마치 큰 특혜처럼 인정되고 있어 보석을 잘 해 주지 않고 있는데 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하겠다. 피의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구속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며, 불구속으로 취조하고 불구속으로 기소하는 풍토가 하루속히 조성되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검찰과 법원이 헌법의 대원칙을 지켜 하루속히 인권 침해 사태를 일소해 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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