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달린 원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어제오늘 시작된 일도 아니다. 그러니「뉴요크·타임스」지가 말했다고 놀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이 일본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지배될 것이라는 얘기 말이다.
「뉴요크·타임스」지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신문이다. 객관적이라는 정평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신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사에 제일 민감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경제가 앞으로 미국보다 일본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괴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래서 미리 경보를 내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죽이나 다행한 일이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얘기는 이 정도로만 끝나지도 않는 모양이다.
「뉴요크·타임스」지의 보도를 따른다면, 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일본이 재정지원을 약속한 것은 지난번 한일각료회담에서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3차 5개년 계획은 일본의 재정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또 그만큼 일본에의 의존도도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를 말끔히 잊고 또는 씻고 서로 돕고 도움을 받고….
아름다운 풍경임에 틀림이 없다. 또 의존성이 경제에만 머물러 있는 한은 별 탈도 없다. 탈은 경제밖에 있는 것이다. 「페리·보트」를 타고 온 일본인학생에게 꼬리를 흔드는 여대생들, 일본상사직원이 온다고 해서 일장기를 들고 비행장에 마중 나가는 사장족, 공식「파티」장에서 흘러나오는 일본「멜러디」…. 사실은 이런게 무서운 것이다.
외세의 침투가 힘을 동반하고 있을 때에는 저항감을 일으킨다. 오히려 주체의식마저 키워 놓는다. 일본이 한국을 무력으로 병합시키려던 때가 그랬다. 33인의한사람이던 최린의 회고록을 보면 합병되던 날 서울 종로의 상가는 여전히 문을 열고 있었다한다. 한국의 시민들이 국가의식을 갖게 된 것은 그 다음부터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가 경제와 문화 같은 간접침투방식을 통해 남의 나라를 지배하려 할 때에는 별로 저항감을 느끼지 못한다. 더욱 두려워지는게 이런 때문이다. 「뉴요크·타임스」지는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의 증대에 따르는 군사개입도의 증가를 우려했다. 그러나 실상 우리가 우려할 것은 더 깊은데 있다. 손을 벌리고도 떳떳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