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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68년 만에, 만세 … 눈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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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갔다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양금덕(82·오른쪽 둘째)씨 등 피해 할머니들이 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고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온 지 68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손해배상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광주지법 민사12부(부장판사 이종광)는 1일 양금덕(82)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 4명과 유족 1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당사자에게는 1인당 1억5000만원씩, 유족에게는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가 13~14세 미성년자였던 원고들을 일본으로 끌고가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하게 노동을 시키고도 임금을 주지 않아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판결이 내려지자 할머니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법정 밖으로 나와 두 손을 번쩍 쳐들며 만세를 불렀다. 양 할머니는 “이제야 가슴속에 박혔던 대못이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 등은 초등학교(당시 소학교)에 다니던 1944년 5월 “돈도 주고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과 헌병의 말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가게 됐다. 제작소에서는 비행기에 페인트칠을 했다. 할머니들은 법정에서 “페인트 독성 때문에 지금도 눈이 불편하다” “밥은 한 끼에 두 숟가락, 반찬은 된장국과 매실 장아찌, 단무지 두어 조각이 전부였다”고 증언했다. “미쓰비시 측이 ‘돌아가면 월급을 부쳐주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할머니들은 일본이 항복하고 두 달 뒤인 45년 10월 귀국했다.

 할머니들은 1999년 국내와 일본 시민단체의 지원을 얻어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2008년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그러자 국내에서 다시 소송을 내 이번에 1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그간 강제 징용됐던 남성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긴 적은 있으나 근로정신대 할머니는 소송을 낸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앞서 올 7월 10일 서울고법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했고, 이어 7월 30일 부산고법은 신일본제철이 피해자 유족 5명에게 8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에 배상금이 늘어난 데 대해 재판부는 “서울·부산고법은 피해자들이 18~22세 남성인 데다 강제노역 기간이 11개월이었던 반면, 이번 피해자들은 13~14세 여성 미성년자이고 노동 기간이 1년5개월인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미쓰비시 측에 “배상금을 다 낼 때까지 연 20%의 이자를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이종광 재판장은 양 할머니 등에게 “억울함과 한을 씻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항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일제 때 끌려간 할머니 4명
일본 미쓰비시 상대 손배소
1억5000만원씩 배상 판결
"가슴속 대못 이제야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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